부산에서만 산 기록으로써의 가치가 부러운 책. 

군포도 그런 책을 가질 수 있었으면

1 꿈과 희망을 품었던 어린 시간들
네 신발은 네가 만들어라 | 송정리 선돌마을 | 형님 대신 얻은 ‘공부’ | 닭을 키워 마련한 월사금 | 첫 직장 다이고쿠 난카이도(大黑南海堂) 약품 도매상 | 다이고쿠 도리마츠(大黑酉松) 사장으로부터 받은 신임 | 나에게만 오는 주문 ‘도리아농 항생제 500g’ | 8개월간의 징병생활 그리고 일본의 패전 | 뒤섞이는 시간, 떠나는 야마자키(山崎) 모녀로부터 물려받은 ‘집’ | 나의 독립, ‘태양약품’ 간판을 내걸다 | 서면의 옛 풍경, 아름다운 추억들
2 나의 운명은 사업, 꿈을 향한 첫걸음
‘태평양’처럼 넓은 스물네 살의 꿈나의 사업 확장, ‘경남약품’을 인수하다 | 일찍 돌아가신 어머니가 남긴 교훈, ‘절약’ |해방의 기쁨은 소용돌이 속으로 | 6·25 전쟁, 나는 다시 군복을 입었다 | 남포동에 차린 미곡상 ‘대원공사’, ‘동진정미소’ | 서른에 시작한 ‘가야술도가’ 사업 | 이병철의 ‘풍국양조’ 막걸리 공장을 견학하다 | 황령산을 좋아하는 서면의 ‘터줏대감’
3. 활어 수출에서 봉제공장까지
폭풍전야의 술도가 사업 | 전국 탁주업자 회의석상에 모습을 보인 박정희 의장 | 진퇴양난의 시간, ‘동진염료’ 사업의 도전 | 실패로 끝난 활어수출 사업과 광산개발 | 대박을 터뜨린 오징어 가공업 | “같이 서울로 가자고 했던” 김현옥 부산시장 | 포크 ·나 이프 제조에서 봉제공장까지, 부산지역 개인소득세 납부 1위로 | 내가 건설업에 손을 대지 않은 이유 | 깡소주를 두 병씩이나 마셨던 힘든 날들 | 땅투기는 한번도 하지 않았다 | 요산(樂山) 김정한 선생과의 깊은 인연| 쉰 줄에 요산에게 받은 ‘경암(耕岩)’이라는 아호(雅號) | 나의 고향 부산
4. 나의 새로운 도전, 교육문화사업
교육의 장을 만들고 싶었던 평생의 꿈 | 맑은 마음으로(晶) 슬기를 가꾸고(慧) 정성을 다하는(誠) 학문의 전당이 되어라, 경혜여고 개교 | 교권의 추락이 아쉽다 | 과잉된 교육열, 거품을 걷어내자 | 새로운 도전, 경암교육문화재단 설립 | 나는 기부에 실패했다
5. 더불어 꿈꾸는 사회, 공동체 정신의 힘
미래를 향한 공동체 정신 | 모든 것을 걸고 싸워라 | 나는 구두쇠란 별명이 부끄럽지 않았다 | 운동화 차림으로 305억 기부금 약정식을 했다 | 더불어 행복한 사회를 위하여 | 인간의 가장 숭고한 정신 ‘협력’ | 불굴의 정신을 보여준 이병철 ·정주영 회장
6. 요즘의 시간들
나를 닮아가는 집이 좋다 | 황혼의 몸과 마음 | 내 만년의 반려자 

| ‘진나라’와 ‘송나라’ 

병원가는 일과 세상에 나가는 일을 담는 달력 한 장 외에는 더 필요한 것이 없다.

| 다음 생에는 글로 세상을 바꾸고 싶다


50년 조선일보 김대중의 글


Posted by allind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