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이균 교정위원 국민포장 받아, 

73회 교정의날 기념식장에서


한국교정상담복지회 대표 겸 서울시 동부구치소 교정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박이균씨가 26일(금) 10시 과천 법무부 청사에서 열린 제73주년 교정의 날 기념행사에서 대한민국 국민포장을 받았다.


국민포장은 국민훈장에 준하는 포상으로 대통령표창보다 한 단계 높은 것으로 민간인이 수상하기 쉽지 않은 훈장이다.


박이균 위원은 1990년 안양교도소 교정위원으로 활동을 시작한 이후 원주에 한국교정상담복지회를 열고 현재까지 재소자들의 자활자립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또한 장기수에게도 삶의 희망을 주어야한다며 사형수제도의 폐지를 주장하고 있다.


박위원은 지난 2006년 교정부분 국무총리 상을 수상한 바 있으며, 최근에는 서울 동부구치소에서 감사패를 받았다.


박이균 교정위원은 "큰 상을 받게 되어 기쁘지만 상당히 조심스럽고 부담스럽다. 30여 년을 봉사한다고 교도소를 드나들었지만 이렇게 큰 상을 받을 자격이 되는지 모르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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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도관이 교정위원되면 재소자 교화에 효과 클 것



한국교정상담복지회 박이균(77세) 대표. 암으로 한쪽 콩팥과 쓸개를 절제했다. 전립선암과도 싸우는 중이다. 붓기가 빠지지 않은 얼굴이지만 푸근한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박이균 위원은 27년을 교정봉사로 보냈다. 서울동부구치소, 육군교도소, 원주교도소 등에서 교정위원으로 봉사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때는 국무총리 표창을 받기도 했다.


그런 박 위원에게 가장 큰 보람은 아들 셋을 둔 그가 3년 전 얻은 양아들 김경수씨다. 1989년 무기수가 된 김씨를 2003년 만났다. 편지를 쓰고 책과 영치금을 보내 주면서 위로하고 사회복귀를 도왔다. 김씨는 "희망이 없는 삶, 돌아갈 곳이 없는 삶에 희망을 품게 해 주신 분"이라 말한다. 박 위원은 올해 2월 29년 만에 출소한 그를 양아들로 입적했다. 박 위원을 만나 희망의 싹을 키워 온 김경수 씨는 건축기사, 건축시공기능장 등을 23개의 자격증을 취득하고 전국기능대회에서 메달을 수상하는 등 재기를 준비해왔다. 출소 후 인테리어회사에서 팀장을 맡고 있다. 그런 양아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양아버지는 참한 처자와 가정을 꾸리게 하는 것을 소망하고 있다. 무기수를 입적하는 절차만 3년이 걸렸다고. 가족은 물론 법무부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데 전례가 없는 일이어서 공무원들이 절차를 이해하는데만도 많은 시간이 걸렸다고 전한다.

많은 교정위원들이 쉽게 보람을 찾고자 단기수형자에게 접근하는데 반해 박 위원은 장기간 옥고를 치르는 무기수 상담에 공을 들여 온 점이 남다르다.?


처음 교정봉사를 하시게 된 계기는?

- 형님께서 교도관이셨어요. 교정공무원들을 자주 만나면서 진심을 다해 재소자들을 교화하려 노력하는 모습을 보면서 도와주다보니 오늘까지 왔네요. 재소자 인권도 김대중 정부 시절에 획기적으로 개선되기 시작했지요. 하지만 아직도 할 일이 많습니다.?


27년 교정봉사 통해 얻으신 것이라면?

- 조두순, 유영철 등 강력사건으로 국민법감정이 무기수에 대한 형을 무겁게 내려야 한다는 쪽으로 흐르면서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 양형위원회를 통해 기존 20년 형을 가처분없는 30년형으로 무겁게 형을 내리게 됐지요. 사면제도를 없애고나니 박근혜 전 대통령이 이 법에 해당되서 중형을 받게 되니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할 수도 있지요.

이전에는 20년형을 받게 되고 17년 정도면 출소가 가능했는데 감형없이 30년형을 살고 나면 대부분 6,70대에 출소하게 됩니다. 사회복귀는 어림없어요. 인권 차원에서도 형량을 조정해야 합니다. 국민청원을 하고 있습니다.


교정제도를 보완할 방법이 있을까요?

- 구치소 마다 100여 명의 교정위원들이 있지요. 대부분 지역인사들을 위촉하게 됩니다. 대부분 수형자들에 대해 모릅니다. 평생을 교화행정에 보낸 퇴직교정공무원들을 교정위원으로 위촉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현장에서 수형자들을 가장 잘 아는 이들이 맡게 되면 더 큰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박이균 대표는 함평에서 나서 서울에서 사업을 했다 안양에서 처음 교정위원으로 위촉됐고 동부구치소(성동) 관내에서 오래 일했다.

유도를 전공하고 아들이 이회창 대선후보 경호를 맡았다가 원주에 정착하면서 내려왔다. 체육관을 하는 아들도 지역봉사로 유명하다. 문막에서는 체육관 박관장 아버지로 더 유명하다. 원주생활을 하면서 육군교도소 등 군 교정봉사에도 힘을 쏟고 있다. 종교는 기독교






Posted by allin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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