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생 김경수씨는 2018년 2월 만기출소했다. 29년을 복역했다.

무기수는 희망이 없는 삶을 산다. 

구치소 안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심리를 파악하는데 도가 트인 사람들이다. 자신들을 위로하겠다고 접근하는 교도관들이나 목사, 스님 같은 종교인들, 그리고 교정위원들의 양면성에 일찌감치 기대를 버리고 산다.

1989년 무기수가 된 김씨는 2003년 동부구치소 교정위원 박이균씨를 만난다. 박씨는 김씨에게 편지를 쓰고 책과 영치금을 보내 주면서 위로하고 사회복귀를 도왔다. 

김씨는 "희망이 없는 삶, 돌아갈 곳이 없는 삶에 희망을 품게 해 주신 분"이라 말한다. 

박 위원은 올해 2월 29년 만에 출소한 그를 양아들로 입적했다. 박 위원을 만나 희망의 싹을 키워 온 김경수 씨는 건축기사, 건축시공기능장 등을 23개의 자격증을 취득하고 전국기능대회에서 메달을 수상하는 등 재기를 준비해왔다. 출소 후 인테리어회사에서 팀장을 맡고 있다. 

그런 양아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양아버지는 참한 처자와 가정을 꾸리게 하는 것을 소망하고 있다. 무기수를 입적하는 절차만 3년이 걸렸다고. 가족은 물론 법무부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데 전례가 없는 일이어서 공무원들이 절차를 이해하는데만도 많은 시간이 걸렸다고 전한다.

무기수는 대개 20년 형을 받아 17년 정도를 복역하면 출소하는 것이 관례였다. 그러나 조두순, 유영철 등 강력법이 사회를 불안하게 하고 이들을 사회와 완전하게 격리해야 한다는 국민법감정에 호응한 정부는 양형위원회를 만들고 사면제도를 없앴다. 김씨도 2006년 10년 형이 늘었다. 

30년을 복역하면 출소 할 때 나이가 6,70대다. 사회복귀는 불가능하다. 이미 가정은 파괴된 상태고 친척들은 남보다 못한 상태가 된다. 모범적인 장기수에게 감형의 기회를 주어야한다는 주장이 커져가는 이유다.

기능장까지 딴 김씨가 건설회사에 취업하지 못하고 개인인테리어회사에서 일하는 이유가 나이 때문이다. 남들 은퇴할 나이에 사회 초년생이다. 김씨는 자기 사업을 하는 것이 유일한 길이고 꿈이다.

Posted by allin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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