넉넉한 풍채에 호빵맨이란 별명도 어울렸을 호인. 밖으로 부드러우면서도 자기 원칙을 굽히지 않는 원칙주의. 도와달란 말을 거절 못해 뒷감당 하느라 쩔절매면서도 끝내 웃고 상대를 웃게 만든다.

일을 당하면 디테일에 강한 실무형 기획가.

군포사람

장로교청년회(장청) 회장

30년간 성가대지휘자

안양시연합성가대 지휘

안양청년회 창립멤버

군포예총 회장 재임시 600여 건의 행사를 치러냈다.

관의 보조금 집행사업 정산의 모범을 보여 지금의 투명한 회계보고 시스템을 갖추는데 기여.

필리핀국제학교 설립을 위해 전재산을 투입했으나 빈손으로 돌아왔다.

군포신문, 경기헤럴드신문, 경기TV 등 지역언론의 자문역으로 건강한 지역언론활동을 도왔다.

2019년 경기TV미디어 창간 www.ggtv.co.kr 

 

경기TV – 경기TV미디어

-사통팔달 수원시, 촘촘한 철도망 구축으로 ‘자가용 없어도 불편 없는 도시’ 만든다- ◦‘수원 1호선’(트램) 포함된 경기도 도시철도망 구축계획 국토부 승인 ◦GTX C노선, 수원발 KTX 직결사업, 신수원선(인덕원~동탄) 등 추진 ◦수원역, 경기 남부 철도교통망의 거점으로…

ggtv.co.kr

 

문화예술을 통해 공동체 복원에 앞장서는 곽상원 전 군포예총회장
세상을 살아가면서 큰 목표아래 작은 과정들의 성취는 개인의 이상실현으로 가는 하나의 계단일 것이다. 순간의 성취가 최고의 계단이라고 생각한다면 더 넓고 큰 시야는 가질 수 없을뿐더러 더 이상의 발전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누구든 최고의 목표를 향한 최선의 노력으로 총체적인 균형과 조화로움을 통하여 삶을 가꾸어나갈 때 어느 한 쪽에 편협하지 않는 공동체의 일원으로 바로 서게 될 것이다. 커다란 숲은 볼 줄 알면서 그 안에 있는 나무를 보지 못한다면 온전하게 숲을 보지 못한 것이고, 숲을 이루는 나무를 보면서 숲을 모른다면 역시 편협하고 좁은 시야로 자기 안에 스스로를 가둘 것이다. 균형과 조화, 총체적인 사고로 열린사회를 지향하는 곽상원 전 예총회장을 만났다.

장학생으로 공부하다.
금강이 적시고 지나는 비옥한 땅 충북 옥천에서 그는 인심 좋고 청정한 마을의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당시 아버지께서는 고등학문을 수학하셨고 고을에서 이장을 하실 정도로 열린 사고로 자녀들을 훈육하셨다. 어려서부터 온순하고 사색하기를 좋아했던 그는 아직 산업화가 안 된 아름다운 자연환경에서 싱그럽고 순수한 유년시절을 보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아버지의 사업전환과 함께 군포로 오게 된 것이 이제는 고향이 되어버렸다. 당시는 산본 신도시라는 그림조차 그려지지 않은 구도시 중심의 군포였다.
수리산 자락이 넓게 펼쳐진 언덕아래 아담한 군포초등학교로 전학을 했다. 도심이라고 보기에는 아주 작은 읍내였던 군포에서 그는 아버지의 바른생활 가르침대로 사는 조용한 학생이었다.
청소년 시절에는 부친의 사업이 부진하여 생활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당시 군포에 중학교가 없어 안양으로 학교를 다녔던 그는 중학교를 졸업할 즈음 인문계 고등학교를 포기해야 할 정도로 가정 형편이 어려웠다. 그는 가정을 돕는 일환으로 졸업 후 경제일선에 빨리 나서기 위해서 실업계인 수원 농림고등학교를 장학생으로 입학, 계속 수학할 수 있었다.
졸업 후 초중고 학교를 각기 다른 지역에서 다닌 덕분에 그는 다양한 인맥을 쌓을 수 있었고, 군 복무 면제를 받아 친구들 보다 빠르게 사회로 진출했다. 당정동에 있는 한일피아노 제조회사에 조율사로의 취업이 그의 경제인으로서의 첫 무대였다. 그러다 지인의 소개로 서울 소재 피아노회사의 조율사로 활동하면서는 집안의 경제적 안정에도 일조하였다.
안양 대리점으로 직장을 옮겨서는 지점장까지 이르게 되었고. 지역에서 다양한 활동과 함께 평소에 하고 싶은 활동을 왕성하게 할 수 있었다.
장로교 안양기독청년연합회의 활동은 그의 사회단체 활동의 시작이었다. 당시 이 단체는 안양, 군포, 의왕, 과천지역의 청년들이 함께 어울렸고, 그는 다양한 활동을 통해 사람과 사람을 섬기는 자세를 배웠다. 성실함과 리더십을 목사님과 회원들로부터 인정을 받은 그는 장로교안양청년기독연합회 회장을 거쳐 초교파적 기독청년회장까지 맡았다. 그의 숨어있던 리더십은 교회활동뿐 아니라 공정선거 감시단 국민운동본부 의장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는데 기여했다. 조용하지만 정의로웠던 그는 최루탄과 투석이 난무하던 시절 부정선거가 판을 치던 때라 젊은이로서 공정한 선거문화를 이끌어 보겠다는 신념으로 동참했던 것이다.

문화예술 저변확대에 동참하다.
음악에 조예가 깊었던 그는 사단법인 한국음악협회 군포시지부에 들어와서 지부장을 맡아 군포시 음악저변확대에 일조했다. 이어 군포예총 4대회장직을 맡으면서는 군포시 문화예술발전에 남다른 공헌을 했다. 산업사회 등장과 함께 새롭게 삶의 질을 높이고자 찾는 문화예술은 도시경제에 엄청난 부가가치를 가져온다는 것을 그는 일찌감치 체감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10시간 잘 때 2~3시간밖에 자지 않는 노력을 기꺼이 기울였다. 남들이 인정해 주지 않아도 시민과 지역발전을 위해 자신만이 가질 수 있는 기획안을 갖기 위해서였다. 그가 처음 시도한 것은 학생들의 예술적 소양을 함양시키기 위해서 군포중학교와 자매결연, 군포시청 대회의실에서 군포시 문화예술발전을 위한 세미나였다. 그는 세미나를 통해 시민사회와 소통하고 화합의 길로 가는 예술분야 확산을 논의했고, 자신이 구상한 것들을 하나하나 실현해 나갔다.
그는 음악협회 주관으로 각 동에 찾아가는 음악회, 수리산 삼림욕장에서의 푸른음악회, 산사음악회, 철쭉동산공연 등을 열어 시민들에게 문화공간을 제공한 것들이 그의 기획 가운데 있었던 것이다. 또한 전국수리음악콩쿨을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 참가하는 대회로 이끌어 명실상부한 대회로 만들었다.
이러한 문화발전을 위한 활동이 그에게는 가장 행복했고 보람이었다고 한다. 그가 음악회를 여는 것은 시민들에게 행복과 기쁨을 주기 위한 것이었고 화합을 유도하기 위해서였다. 군포시가 지역적으로 특화된 것이 없어서 그런 것들을 개발하고 연구한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그가 예총회장에 있으면서 가장 잊지 못하는 것은 수리문화예술제의 첫 예산 1000만원을 3억4천만 원까지 키워낸 것이다. 형식적인 문화예술제가 아닌 시민들이 참여하는 문화예술제로 성장시키기 위해 그는 비난을 감수하면서 회장의 역할을 묵묵히 해냈다.
예총회장의 임기를 마치고 그는 체계적인 문화예술 발전과 공동체 복원을 위해 사단법인 한국커뮤니티연구원을 설립했다. 그는 예총에서 다하지 못한 것을 커뮤니티연구원에서 여러 회원들과 아이디어를 짜내고 있다. 문화예술이 지역과 종교를 초월한 공동체 복원에 가장 좋은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 그다.

공동체 복원에 다하다.
또한 문화예술만 고집하지 않고 지역현안에도 참여하고 있다. 지역민의 동의 없이 추진 중이던 수원광명간 고속도로 건설반대를 위해 반대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집행위원장까지 맡았다. 그는 반대를 위한 반대가 아니라 환경영향평가를 통해 문제점을 찾고 대안을 강구하기 위해서 문화예술인으로서의 새로운 변신을 했다.
그는 모든 생활이 어렵다고 겸손해 한다. 사실 그는 성실함 덕분에 큰 어려움 없이 생활해왔다. 그가 생활신조로 삼는 역지사지의 정신이 그를 옳은 길로 가게 했는지 모른다.
그는 평소에도 자신의 신조를 잃지 않고 생활한다. 그래서 인지 배려하는 사람을 가장 존경한다고 한다. 남에게 상처 주는 것보다 남을 이해하고 격려해 주는 사람이 존경받는 사회가 되어야 공동체가 복원된다는 곽 회장.
그는 지금껏 배움에도 게으르지 않고 평생학습을 지향하고 있다. 그가 가정 형평상 배우지 못한 배움을 늦깎이로 기독음대 지휘학과를 졸업하고도 한세대학교 사회교육원을 수료 및 다양하고 폭 넓은 견문을 지속적으로 익혀나가고 있다.
그는 군포교회에서 23년 동안 지휘를 할 정도로 초지일관의 문화예술인이다. 그의 탁월한 업적을 경기도지사상, 군포교회 23년지휘 공로상, 자랑스런 경기음악인상, 군포시민대상(문화예술), 경기음악협회 공로상 등이 입증해 주고 있다.
잔잔한 그의 웃음은 다원화된 사회의 복잡성을 단순화시켜 준다. 남의 이야기를 많이 듣고 실행하기에 그 옆에는 많은 지인들이 모인다.
그는 “살다보면 사람의 시각이 자꾸만 좁아진다. 그렇기 때문에 숲과 나무를 동시에 보는 시각이 중요하다. 또한 조화롭고 균형적인 시각을 갖기 위해 노력하면 자신들이 원하는 세계를 구할 수 있다. 크고 모가 나지 않는 행복한 세계, 모두가 화합하고 이해되는 세상을 구현할 수 있는 것이다 ”라고 후배들에게 이른다.
문화예술은 지역의 정주의식과 화합을 이끌어 내는 가장 좋은 방법 중의 하나이다. 문화예술을 통해 공동체 복원이라는 꿈을 키워가는 곽 회장처럼 우리나라 곳곳에서 그의 혼이 널리 퍼지길 기도해 본다.

[출처] 문화예술을 통해 공동체 복원에 앞장서는 곽상원 전 군포예총회장 (산사모(군포산본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작성자 고재영빵집

 

산사모(군포산본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 네이버 카페

아름다운 도시를 만들기 위한 사람들의 모임입니다.(군포/산본)

cafe.naver.com

 

약력
충북옥천출생
군포초, 안양중, 수원농림고 졸업
안양지구(군포,안양,과천,의왕) 기독청년연합회장 역임
기독음대(지휘)졸업
한세대 사회교육원 수료
군포시 축제연구단 단장 역임
전국수리음악콩쿠르 운영위원장 역임
(사)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군포지회장 역임
수원•광명간 고속도로관통반대 집행위원장 역임
군포시 합창 연합회장
Phill World Misson 선교재단 이사장
전국 수리동요대회 대회장
GIB 인터넷방송 대표이사
(사)한국커뮤니티연구원 이사장
(사)한국음악협회 군포시 지부장
경기도지사장 수상 
군포교회 23년지휘 공로상
자랑스런 경기음악인상
군포시민대상(문화예술)
경기음악협회 공로상

[출처] 문화예술을 통해 공동체 복원에 앞장서는 곽상원 전 군포예총회장 |작성자 송용순

 

Posted by allin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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