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씨 잘쓰는 사람. 남양주 다산, 안산 성호와 더불어 실학의 거두라 일컬음을 받는 사람. 청나라때 금석문의 대가. 

추사 때문에 인생 망친 삶이 여럿이다. 어떤이는 추사 서화를 가지고 있었는데 아는 이가 팔아준다고 가져가고서는 종적을 감추는 바람에 돌아버렸다. 그를 잡기 위해 하루종일 고속버스터미널에서 그를 잡으려고 기다리기도 했다. 멀쩡하던 이가 그 일로 인생이 망가져버렸다.

또 다른이는 지방부호의 아들로 자라 젊어서 추사에 빠지고는 전 재산을 팔아 그의 작품을 사모았다. 가짜라는 걸 알면서도 사들이는 바람에 한동안 그에게 가져가면 돈번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렇게 모은 추사작품을 한데 전시하고자 감정을 했는데...... 감정한 이는 아직도 그에게 진실을 말하지 못한다. 

[완당전집]을 내고 추사연구에 일가를 이루었다는 소리를 듣던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은 2006년 후지즈카 아키나오가 아버지 치카시의 연구자료를 과천에 기증하던 날 그 자료를 보고는 [완당전집]을 다시써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다시 썼다.

최종수. 과천문화원장이던 시절. 추사가 과천에 살았다는 이유로 과천시가 추사를 조명하기로 하는 바람에 추사학술대회를 열 실무자로 지목되면서 추사와 최종수의 인연이 시작된다. 최종수가 후지츠카 아키나오의 추사자료를 과천시에 기증하게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되고 과천시는 과지초당을 복원하고 추사박물관까지 짓는다. 그러나 최종수는 초대박물관장이 되지 못한다. 최종수는 아키나오에게 했던 사내로서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아직도 추사에 매어 있다. 성균관 학자들에게 추사와 과천인연을 설명하는 일도 최종수 말고는 할 사람이 없다. 

[추사에 미치다]란 책을 쓴 이 모라는 기자도 있다.

취재를 할수록 무엇이 이 사람들을 이토록 빠져들게 하고 패가망신하게 했는지 궁금해졌다.

신화가 필요한 현세는 제 편한대로 죽은 사람을 불러내다가 제 편한대로 세워놓는다. 

왜 이사람들이 추사에 미칠까?

Posted by allin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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