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태기 태영산업(주) 대표(용인8기)

태영은 사실 카네기 인하우스 과정을 할 처지가 아니었다. 20년을 거래하던 모기업이 싼값에 생산하겠다며 거래중단을 통보하고 중국으로 거래선을 돌린 처지라 별다른 거래선을 준비해온 업체가 아닌 입장에서 당장 회사의 사활을 걱정해야 하는 입장이다.

그런 상황에서 25명 직원들에게 6주간의 인하우스 과정을 수료케 한 강태기 사장을 만났다. “우선 직원들 얼굴이 밝아져서 좋아요”라고 웃는다. [물 흐르는 대로 산다]는 자칭 낙천적인 성격의 강사장은 입은 옷 한 벌이 전부인 1979년부터 오토바이 헬멧만 만들며 살았다. 세계시장의 30%를 차지하는 HJC와 KBC를 파트너로 일을 배웠고 그들을 위해 OEM메이커로 태영을 키워왔다. 세계적인 모터사이클 메이커 할리데이비드슨 상표를 단 라이더 전용 헬멧이 강사장의 손에서 만들어진다. 영화 터미네이터에서 액체금속으로 만들어진 안드로이드가 경찰복장을 하고 쓴 헬멧도 태영의 전시장에서 볼수 있었다. “일하는 것 밖에는 재주도 없고 재미도 몰랐다. 하지만 뭔가를 배우려는 노력은 항상 하며 살았다”고 말한다. 소문 듣고 자신이 용인 8기를 수료했다. 이후로 간부들을 2,3명씩 카네기 교육을 받게 했다. 그러다가 아예 인하우스 과정을 듣게 한 것이다.

물 흐르는 대로, 순리대로 살아왔다지만 강사장은 자기 관리가 철저해 보인다. 하청생산하는 메이커가 흔히 겪는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부정한 방법으로 일을 따지 않는다” “줄 돈이면 먼저 주거나 최소한 약속 날짜라도 지켜라” 그러면서도 자신은 2004년 지금 공장이 자리한 용인축구센터앞에 공장을 지을 때까지 방 두 개의 12평 빌라에서 아내와 두자녀(아들 고3, 딸 고1) 그리고 형수와 함께 살았다.

“아내가 고맙게도 검소하게 생활해 주었지요. 생활비가 동네에서 가장 적게 들었을 정도로 살았어요. 그런 아내가 고마워서라도 20년 넘도록 생일, 결혼기념일을 잊지 않고 챙기곤 합니다”

그런 성실함이 그리고 원칙에 강한 자기 고집이 오늘의 태영이 있게 했다. IMF 이듬해인 1999년에 공장에 불이 나서 모든 것이 사라져 버렸을 때도 하청사와 자재상에서 그를 믿고 밀어준 고마움을 잊지 않는단다. 그것이 그의 재산이란다.

인하우스 과정을 시행하면서도 이희정 강사에게 당부했단다.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유치원에서 다 배웠다. 그 정도만 제대로 지키고 살면 된다. 그것을 되새기게 해주고 즐겁게 사는 방법을 가르쳐 달라” 직원들에게는 “가족을 다스리지 못하는 사람이 회사에 나와서 간부가 되겠느냐” “세상에 내가 죽는 일말고는 큰 일이 없다. 작은 일에 호들갑 떨지 말고 크게 나아가라” 웬지 그런 자세로 세상을 사는 사람앞에 두려울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Posted by allin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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