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원동사무소 자리에서 났어요. 그전엔 문원 2리지. 과천 읍내에서 비석거리로 해서 나온 데가 문원 3리야.”

 

강 회장은 15살 중학교 2학년 무렵에 6·25를 겪었다.

 

내가 막내였어요. 형제가 많았죠. 운이 좋았는지 이리저리 잘 풀렸어요.”

 

과천에 버스 다닐 무렵에는 버스가 안양으로 해서 영등포로 돌아서 다녔다. 과천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가서 공부하고는 서울서 교직생활을 했다. 강씨는 원효초등학교, 송전초등학교, 문백초등학교에서 교장을 지냈다. 1999년 문백초등학교에서 교육공로표창 받고 정년퇴직했다.

퇴직 후에는 매봉경로당 회장, 5단지 노인회장을 하면서 대한노인회 과천지회 부회장을 거쳐 2012년도에 노인회 지회장이 됐다. 2010년 무렵에는 노인회 건물이 문원동에 있었다. 그라운드골프 회장도 맡았었다. 인터뷰 당시 과천노인회장을 맡고 있었다.

 

(노인대학장 : 그러니까 과천면 분회 였다가 시되면서 시 지회가 된거죠. 그전에는 시흥군지회의 분회였을거고....노인회 일을 보시기 전에는 평생 서울서 초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던 거구요. 젊었을 땐 서울서 사셨고 정년 즈음에는 서울로 출퇴근 하셨죠. 1955년 당시의 사범학교는 사범대학이 아니고 고등학교 과정의 사범학교예요. 당시에는 사범학교 학교 졸업하면 초등학교 교원 자격을 줬어요. 그 이전에 아마 20세 전후로 해서 선생을 하셨을거예요. 18세 만 되도 가능했으니까...)

 

서울에 집안 친척들도 많이 살고해서 서울에서 집을 얻어서 다녔죠....결혼 전부터 선생을 했어요. 보통 평교사에서 그 당시에 교장까지 승진하려면 그래도....운이 좋은지....”

 

(노인대학장 : 운이 아니라 열심히 하셨어요. 연구학교 시범학교 그런 과제를 많이 하셨어요. 서울은 오지 점수는 없고. 지방 경기도 같은 데는 이제 섬에 가서 근무하던가 강원도 같은 데는 산 깊숙한데.....경기도 선생님들 가운데는 지방에서 온 사람들이 진급이 빨라요. 그게 왜냐면 전남이나 경남이나 이런데 가면 섬들이 많잖아. 오지점수를 충분히 다 가지고 와 가지고 오히려 그분들이 여기 있는 사람들보다 점수관리가 잘 되는 거야. 교장 교감 나오는데는 그래 호남분들이 많지. 그리고 해방 후에 일본사람들이 다 돌아가고 그래서 선생이 부족했어요. 당시에 고등학교 나오고 강습소라는게 있어서 한 6개월 공부하고 선생된 분들도 있었죠. 그리고 그 당시에는 좀 일찍 관리자가 교장 교감도 되고 그랬어요. 그런데 우리 회장님은 그 세대 보다는 조금 아래 세대기 때문에 선생을 거쳐서 교장이 되신거죠.)

 

“2000년 초반에 이제 퇴임하고 내려와 아무것도 안하고 있었죠. 그랬더니 후배들이 외지에 가서는 여러가지 하더니 고향에 와서는 아무 것도 않느냐? 그런 얘기를 하더라고.”

 

퇴직 후 노인회 활동 말고도 과천향우회, 과천시민회 등에서 활동했다. 지금도 경기도민회 이사로 있다. 경기도민회는 경기도에서 연 4천만원 정도를 지원받아 관내 장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한다.

 

(평생 교직에 계셔서 그랬는지 뭐 정치나 뭐 이런 쪽에 관여 안 하시고 노인분들 복지를 위해서만 일을 하신 편이신 거예요?)

 

그렇지요. 내가 뭘 정치 쪽으론 생리도 안맞고....그곳에 관심도 안 가지고.....”

강회장은 평생 원하던 바를 거의 다 이루었다고 자평한다.

 

"교직을 한 거 자체가 그렇고...... 내가 담배 술을 아예 배우질 않았어요. 그래서 젊어서부터 아예 술 담배 안 하겠다 결심을 하고 평생 그걸 지킨거고......건강관리는 내가 달리기 선수였어요. 대회에 나가고 그랬죠."

 

평생을 순탄하게 산 강씨에게 비결을 물었다.

 

내 욕심을 안 내면 내가 하는 일에 거부감 갖는 사람이 적지요. 교직에 있을 때도 그랬어요.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 나도 같이 하고.....협력하면 일단 인정을 받잖아요? 내가 필요한 사람이 되고 내가 꼭 필요한 곳에서는 내 위치를 다 하고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든지 폐를 끼치지 않고 살면 평생 크게 어려움 없이 살 수 있다고 생각해요.”

 

노인회를 맡아 할 때는 갈등을 중재하는 일을 많이 했다.

 

3자 입장에서 이게 옳다. 이대로 하면 된다 싶으면 그런 점을 이해 시켜주는데 애를 썼어요. 과천에서 만이 아니고.......서울에서도......그런 일이 있으면 일단 내 욕심을 일단 접어 놓고 이렇게 하는게 좋지 않겠느냐?’ 이해를 시키려고 애를 썼지요. 나중에는 상대가 스스로 이렇게 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갖도록 하는거지요.”

 

(2019.5.21 노인회관에서 석용훈 부회장, 이정달 노인대학장 배석)

Posted by allin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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