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필운 안양시장

이경수~ 2012. 7. 29. 17:17

겸손과 겸허한 자세로 지역발전에 동참한 이필운 전 안양시장

2012년 07월 27일 [(주)경기헤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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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경기헤럴드


  1. 아름다운 공동체가 형성되려면 정직이라는 공통분모가 있어야 한다. 경제적으로 청렴, 사회적으로 믿음, 친구 간에는 우정, 자신과는 떳떳한 마음가짐이 있어야 서로 인정하는 사회가 될 것이다. 이러한 것의 공통분모가 정직이라고 말하는 이필운 전 안양시장. 그는 공직에 있으면서 정직을 바탕으로 공명정대하게 행정을 전개해 대외적으로 인정받은 바 있다.

    꿈을 향해 가다.
    수리산과 관악산으로 둘러 싸여 있고 중앙으로 안양천이 가로지르는 안양시는 오늘에 그를 있게 만들어준 곳이다. 그는 4남매 중 맏이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집안의 기둥으로서의 책임감과 함께 성장했다. 6.25사변이 끝나고 사회가 혼란한 시기에 태어났던 그는 현대사와 함께한 산증인이다. 경찰공무원이었던 그의 아버지는 청렴결백하여 지역에서 존망을 받았다. 어려운 생활로 인해 구멍가게, 하숙을 치며 강인한 생활력으로 척박한 가계를 책임져야 했던 그의 어머니는 남다른 교육열의와 함께 그에게 늘 큰 인물이 되도록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어린 시절 그는 안양천에서 멱을 감고 친구들과 수리산을 뛰어 다니며 호연지기를 다지기도 했다. 키는 작았지만 그는 학창시절 늘 친구들의 리더가 되었고 자신보다 어려운 친구들에게는 따뜻한 친구가 되어 주었다.
    그가 초등학교 다닐 때는 안양이 포도밭으로 전국에서 유명한 곳이었다. 그는 친구들과 함께 포도서리를 하러 갔다가 주인에게 들켜 도망쳤지만 그의 친구가 붙잡히는 바람에 그는 도망을 포기하고 포도 주인에게 되돌아가 잘못을 빌었다. 그 소식을 듣고 달려 온 그의 어머니는 자신의 잘못인양 주인에게 사죄와 함께 포도 값을 물어주며 돌아오는 길에 그에게 "필운아, 포도 서리를 하는 것, 남의 노력을 대가없이 가져오는 것은 정말 나쁜 짓이야. 아직은 어려 장난삼아 하는 것이겠지만 이 어미가 100번 말을 하는 것보다 오히려 지금의 한 번 경험이 너에게 도움이 될 거야"라고 야단보다는 따뜻한 격려를 해 주셨다. 당시 그는 겁을 잔뜩 먹고 있었지만 어머니의 따뜻한 사랑에 눈물을 흘리며 잘못을 뉘우쳤고, 그 후부터는 어떠한 일에도 자신의 노력이 들어가지 않은 것에는 욕심도 탐도 내 본적이 없다고 한다.
    그가 돌아오는 길에 사람이 잘못했을 경우 야단과 격려가 주는 교훈을 직접 체험, 그는 그 교훈을 인생의 좌우명으로 삼으며 자신의 실력함양에 더 매진하게 되었다. 중학교를 서울로 진학하여 열차 통학을 하게 되었으며 그 당시 열차통학생들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가로등’이란 모임에 가입하여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다. 그리고 학교성적이 우수했던 그는 성균관대학교에 진학했다.
    그러나 대학시절 한때 민주주의와 가치관 혼란, 갈등으로 인해 아버지와도 소원해졌었고 집에서는 걱정과 긴장의 연속이었다. 그러다 우연히 방학 때 절에서 공부하는 친구를 만나 자신의 인생항로를 다시 정하고 남은 대학생활 내내 고시준비에 전념한 결과 고시에 합격을 할 수 있었다. 그동안 아버지에 대한 죄송함과 젊은 청년으로서 짊어지고 가야할 소명에서의 갈등도 봉합되어 자신의 꿈을 여는 첫 발령지가 충남도청이었다. 이때 안양에서는 큰 인물이 나왔다고 동네잔치를 열며 마을주민 모두가 내일처럼 기뻐했다고.

    목민관의 모범을 보이다.
    사실 그가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까지는 아버지의 얼굴을 자주 뵌 적이 없다고 한다. 아침 일찍 경찰정복을 입고 그에게 입맞춤을 해 주신 기억과, 야근과 비상이 없을 때 일찍 들어오신 기억이 전부인 부친은 그에게 늘 우상이었다. 그가 철이 들면서부터는 아버지께서 종종 그에게 행정가가 되어 어려운 주민들을 위해 행복하고 아름다운 공동체를 만들어 보라는 말씀을 해주셨다. 이에 그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늘 꿈을 꾸었었다고 한다.
    경기도청에서 수습을 마치고 충남도청에 발령을 받자마자 그는 군에 입대하게 되었다. 처음엔 부산 항만사령부에 배치되어 수입된 군수물자를 처리하는 임무를 맡게 되었다. 행정학을 전공하고 도청에서 익힌 행정을 군에서 유감없이 발휘하여 그는 상관으로부터 언제나 인정받았다.
    제대 후 그는 도청에 복귀, 동료의 소개로 그의 아내를 만나게 되었다. 일벌레인 그에게 그의 부인은 핀잔보다는 배려와 이해심으로 공직생활에 누가 되지 않도록 내조해 주었다.
    그는 어느 자리에 가든 자신의 업무만큼은 최고가 아니면 성이 차지 않았었다. 그런 책임감과 성취욕으로 인해 승진이 동료보다 빨랐던 그는 여주군수로 발령받아 목민관으로 새로운 세계를 걷게 되었다.
    탁월한 그의 업무추진을 인정한 청와대에서는 그에게 청와대 민정비서실로 발령을 내어 그의 실력을 다시 입증하는 계기를 맞았다. 청와대 파견근무를 탁월하게 마친 그는 평택부시장으로 발령받았고, 이때도 그는 평택시개발에 남다른 애정으로 자신의 열정을 쏟아 부었다. 경기도청 경제투자실장을 하던중에 국무총리실 노동여성심의관으로 발령을 받아, 다시 중앙부처에서 업무를 보게 되었다. 그 당시 노사관계, 여성의 사회적 지위에 논쟁이 아주 심할 때여서 그의 청렴하고 중용의 행정은 어느 부서에서도 요구되고 있었다.
    2년 동안의 중앙부처에서 업무를 마치고 드디어 자신의 고향인 안양시 부시장으로 금의환향했다. 당시 그는 안양시의 낙후된 곳과 계발계획을 위해 직접 현장을 진두지휘했다. 그런 열정의 모습을 본 안양시민들은 그가 안양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했을 때 지지하여 민선시장으로 고향을 책임지는 막중한 임무를 맡게 했다.
    그가 안양시장으로 재임하면서 안양시는 눈부시게 발전해 나갔다. 그는 부하 직원에게 책임 있는 행정, 시민을 위한 행정을 주문하며 그 역시 시민과의 대화를 확대해 나갔다. 그 결과 안양시는 2008년도에 공공기관 청렴도 전국 3위, 지방대중교통시책 평가 전국 1위, 모자보건사업 평가 보건복지부장관상 등 15개의 상을 수상했고, 올해의 부부문화도시 인증서를 세계부부의 날 위원회로부터 받았다. 2009년도에는 규제개혁 우수사례 평가에서 경기도 최우수, 보육사업 유공 경기도 최우수, 일자리 창출 경기도 최우수, 자원봉사자의 날 전국 대상, 전국청소년수련시설 종합평가 전국 최우수, 전국 방과후아카데미 평가 우수 등 31개의 상을 받아 청소년과 소외계층을 위한 그의 소신은 대외적으로 인정을 받게 되었다. 그의 시정업무 마지막 해 인 2010년에는 국민신문고대상 옴부즈만 부문과 지역사회변화 프로그램우수 사례평가에서 대상을, 전국 기초생활권 발전계획평가에서 전국 우수기관으로 인정받아 그는 어렵고 소외계층을 위한 시장으로 존경을 받게 되었다.

    미래지향적인 사고를 갖다.
    그가 존경받는 행정가로 인정받고 있었지만 그의 옆에는 늘 전공서적이 놓여 있었다. 여주군수를 마치고 그는 부족한 행정분야와 선진행정을 배우기 위해 미국으로 2년 간 유학을 갔었다. 그곳에서 그는 새로운 분야에 눈을 뜨게 된 것이다. 사회복지와 여성의 사회적 진출 등 한국에서 사회적 이슈가 되기 전의 분야였다. 그가 이러한 분야에 많은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사회복지를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소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석사과정을 마친 그는 늦깎이로 대학원 박사과정에 입학하여 주경야독으로 10년 만에 박사학위를 취득하기도 했다.
    그는 자신보다 도민과 시민을 위해 책임완수를 하여 충남도지사 표창, 상공부장관 표창, 국무총리 표창, 홍조근정 훈장 등을 받아 그의 탁월한 업무능력을 재차 인정받게 되었다.
    행정의 달인인 그에게도 인생의 쓴맛을 본적이 있다. 지난 안양시장 선거에서 떨어져 인생의 첫 실패를 경험한 것. 시민을 위한 행정, 복지, 교육, 문화 등 안양시의 청사진을 설계하고 제시했지만 안양시민은 그를 외면했다. 선거에서 떨어진 그는 지난 시간을 회상하고 어머니가 포도서리 때 해 주신 말씀을 되새기며 언제나 자신감에 차 있던 자신을 얼마나 자책했는지 모른다.
    그는 자신을 오늘에 있게 키워주신 아버지를 가장 존경한다고 한다. 그는 박봉의 월급으로 불의와 타협하지 않으시고 오직 정직과 청렴으로 공직을 마감하신 아버지를 닮고 싶어 살다보니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청소년들에게 정을 갖는 청소년이 되라고 일러준다. 그는 “사회가 각박하고 경쟁이 우선되고 있어 삶 자체가 건조해 지고 있다. 또한 배려심 부족과 함께 자기중심적 사고는 아름다운 이웃을 만들 수 없다. 우리 청소년들은 균형 있는 사고를 위해 정이 있는 청소년이 되어야 한다.”라고 주문하고 있다.
    자신의 삶과 미래를 고향에서 보내고 설계하는 사람은 무엇보다도 행복할 것이다. 공직과 학업 이외 고향을 떠나 본 적이 없는 이필운 전 안양시장. 그는 겸손과 겸허한 자세로 지역발전에 누구보다도 모범을 보였다. 미래지향적인 마음으로 국가와 지역을 위해 봉사한 그는 언제나 낮은 자세로 고향의 향기를 마시며 아름다운 공동체가 되도록 노력하고 있다.
    그가 바라는 아름다운 공동체는 정직을 기반으로 누가 보더라도 인정하고 친소가 따로 없는 안양의 본 모습일 것이다.

    약력
    성균관대학교 행정학과 졸업
    아메리칸대학교 대학원 행정학 석사
    경기대학교 대학원 행정학 박사 취득
    전국자전거도시협의회 초대 회장
    여주군수
    청와대 민정비서실 행정관
    경기도 자치행정국장
    국무조정실 노동여성 심의관
    경기도 안양시 부시장
    경기도 안양시 시장
    현 새누리당 안양시동안갑 위원장
    현 수원대학교 초빙교수
    충남도지사 표창
    상공부장관 표창
    국무총리 표창
    홍조근정 훈장

 

 

Posted by allin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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