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인 - 이호헌 숙지고 역사교사.
“옳은 일에 마음을 두고 살려 애쓴다.”
정의로운 이들이 주류사회를 이루는 사회라야
발안 만세운동의 순국선열 이정근 의사의 증손, [친일인명사전]낸 민족문제연구소 경기남부지부 상임고문
탄운(灘雲) 이정근(李正根) 義士의 증손자 이호헌 씨는 수원 숙지고교에서 역사를 가르친다. 이정근 의사의 손자 이신재(87세, 광복회 고문. 탄운이정근의사기념사업회 이사장)옹의 아들이다. 이정근 의사는 팔탄면 가재리에서 태어났다. 33세에 상경하여 대한제국 궁내부에 근무하시다가 1905년 을사늑약으로 국권이 침탈당하자, 관직에서 물러나 낙향하여 15년간 고향에서 청년들을 교육하며 제자, 동지들을 규합하여 독립운동 비밀조직망을 구축하였다. 1919년 서울에서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나자 3월 30일 발안장날 제자, 주민들과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시다가 현장에서 일제 헌병의 총칼에 56세를 일기로 순국하셨다. 이의사께는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 됐으며 대전국립현충원에 안장되셨다.
지난 27일 전 국무총리와 광복회 역대 회장들을 비롯한 4백 여 명의 인사들이 참석한 탄운의사 91주기 추모대회에 참석했던 이교사의 마음은 남달랐다. 과연 그곳에 모인 사람들이 독립운동을 하던 그 선열들의 정신을 얼마나 절실하게 느끼고 현실의 삶에 실천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향남읍 평리에서 이신재 이사장의 6남매 중 맏으로 태어난(1952년생) 이선생은 지금 수원의 학교 근처에 살고 있다. 1990년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결성되면서 처음에는 후원하는 마음으로 참여하다가 뒤늦게 전교조에 가입해서 활동을 시작했다. 입시경쟁에 신음하는 아이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서는 교육개혁이 절실하다는 생각에서 그 역할을 하는 것이 전교조라고 믿어서였다. 하다 보니 2002년 민족문제연구소 경기남부지부에서 함께 하자고 연락이 왔단다. 1949년 이승만 정부에 의해 와해된 반민특위의 정신과 친일문제 연구에 평생을 바친 고(故) 임종국 선생의 유지를 이어 1991년에 설립된 민족문제연구소(소장 임헌영). 지난 해 [친일인명사전]을 펴낸 민족연구소 경기남부지부장을 지내고 지금은 상임고문으로 있다.
-실례를 무릅쓰고 반골기질이 집안의 가풍이냐고 물었다
“옳은 일에 마음을 두고 살려고 하는 거지요. 나이가 들다보니 젊었을 때처럼 활동성은 약해지는 것 같아요. 게다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상대방의 처지를 이해하려는 마음이 좀 더 커졌다고나 할까요?.”
-아버님이신 이신재 옹의 활동에 대해서는
“아버님은 원체 활동적이시고 마당발이세요. 거기다가 지역사회를 위한 봉사정신이 열렬하셔서 최근까지도 여러 단체에서 활발하게 활동하십니다. 그날 추모대회에서 부친의 80여 년의 삶을 정리한 80쪽의 회고록을 나누어 드렸지요.”
-지난 기념식에 느낀 소감이라면?
“많은 사람들이 모여 성대한 추모대회를 함께하였지만 독립운동의 뜻이 현재적 삶에 어떻게 연결되는지 깊이 이해할까 싶어요. 요즘에 만연한 물질만능주의적 가치관에 따르면, 왜 처자식을 버리고 바보같은 짓을 했을까 하는 속내를 가진 이들도 있을 테니까요. 역사는 현재적인 것 아닙니까? 현실과 연결되는 거지요. 그런 의미에서 독립운동은 지금도 진행 중이라고 하겠지요. 해방 이후에 제대로 청산되지 않은 친일세력들이 이승만 정권 당시 정부 요직의 7,80%를 차지하고 넘어 갔어요. 그들이 뒤를 이어 사회 주류를 차지하는 세력으로 남은 거지요. 이게 문제예요. 그들이 우리 사회의 주류가 되다 보니 항일민족운동을 폄하하는 뉴라이트 같은 세력들도 나오게 되는 거지요. 이런 상황에서 추모제 같은 행사가 현재 상황과 연결될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지금 우리 사회를 보세요. 얼마나 무서운 경쟁사회인가요? 사회주류에 의해서 행해지는 일들이 잘못된 교육이 되고 있어요. 정의롭고 의로운 사람들이 주류사회에 편입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잖아요? 우리는 너무 정치공학적인 나라에 살고 있어요. 역사와 시대정신에 깨닫는 의식과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주류가 되는 날이 올 때라야 바로 된 나라를 세울 수 있어요.”
홍난파를 찬양하는 화성시의 정책에 반대한다.
-[친일인명사전] 편찬 당시 지역 의견이 들어갔나요?
“인명사전은 철저하게 진실과 공정성을 담보하기 위해 전문적인 편찬위원들에게 맡겨졌지요. 지부에서 하는 일은 회원 확보를 통하여 미약하지만 재정적으로 후원하는 일과 연구소 활동을 널리 홍보하여 민족문제 의식을 일깨우는 일을 합니다. 하지만 지역에서는 나름대로 활동을 했어요. 2000년 초 수원과 화성지역에서 홍난파 선생을 민족음악가로서의 업적은 인정하지만 그가 1938년 이후에는 대동민우회, 1941년에는 조선음악협회 등 친일단체에 가담하여 활동한 친일전력이 분명한 만큼 그를 기념하는 행사를 여는 것에 반대하는 의견과 활동을 평쳤습니다. 역사란 새롭게 재평가 될 수 있는 것이지만, 현재까지 밝혀진 바에 의하면 일제강점기에 천재적 음악성으로 민족 반역 행위를 저지른 것은 분명하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최근에 발간된 [친일인명사전]이야 말로 해방 이후 애국과 친일이 전도되고, 진실과 거짓이 뒤바뀐 왜곡된 가치관을 바로 잡을 수 있는 길잡이입니다. 그걸 바로 잡지 않으면 민족정기를 흩으려 놓게 되고 말아요”
2009년 11월 8일 발간된 [친일인명사전]에는 홍난파씨의 이름이 들어가 있다. 11월 17일 발행될 예정이었던 대통령 직속 [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의 보고서에는 난파측의요청을 법원이 받아들여이름이 올라가는 것이유보됐다. 비슷한 시기에 생긴 일이라 많은 이들이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이 올라가지 않았다고 생각한다.현재 화성시는 그의 생가를 복원하기 위해 생가터를 사들였다.
-교사로서 한 말씀?
“출범 초기 전교조는 민족, 민주, 인간화 교육을 기치로 내걸고, 왜곡되고 파행적인 우리 교육을 바로 잡으며,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시민 육성과 민주적 사회로 발전하기 위한 교육적 노력을 추구하였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사회 민주화, 민족 통일 등 사회 전반에 걸쳐 인간으로서 나아갈 바를 추구하자는 데서 출발했어요. 이 사회 주류들의 잘못된 해방 전후사 인식들이 너무 깊어요. 해방 이후 교과서에 민족 반역 행위자들이 오히려 존경의 대상이 되는 그런 거짓의 교육을 받아온 것은 우리 기성세대들이 다 경험한 것이 아닙니까? 반면에 해방이후 감추어지고 가려지고 박해받은 훌륭한 인물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 분들을 제대로 조명하는 교육이어야 해요. 그리고 아이들에게 바른 역사를 가르치는 일도 중요하지만, 사회의 주류를 구성하는 이들이 사회공동체 심성이 깊고 의로운 사람들이어야 하는 것도 그 때문이예요. 교육은 학교뿐만 아니라, 이 사회가 그대로 후세를 위한 교과서가 되는 것이니까요” (김용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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