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공직을 퇴직한 이한수 화성시의회 사무국장
“고향 팔탄에 기피시설 설치위해 주민설득 나설 때가 가장 힘들었다”
지난 1월 13일 40년을 지고 온 짐을 내려 놓은 남자의 어깨가 가뿐해 보였다. 아내 김근식씨와 여행을 가려고 짐을 싸던 중이라던 이한수 의회사무국장을 만났다. “중매로 만나 1남2녀를 기르느라 고생이 많았다”고 덧붙였다.
팔탄에서 나고 자란 그는 남양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1970년 팔탄면사무소에 취직한다. 10년여 면사무소에서 일한 그는 새마을운동의 바람이 불 때 현장에서 논두렁을 달리는 젊은 공무원이었다. 새마을운동이 그에게는 가장 큰 화두였고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도 마을 어르신들을 찾아다니고 친구들을 독려하며 정부시책을 실현하는 최일선의 대한민국 공무원이었다. 박정희 대통령을 지나 전두환 대통령 시절에 그 공로로 대통령표창을 받았다.
10년여의 면사무소 근무 끝에 군청에 들어갔다. 3년 정도를 지나서 1998년 팔탄면장으로 금의환양했다. 살아계셨으면 자랑스러워하셨을 부모님께서 돌아가신 것이 아쉬웠다.
돌아온 고향 팔탄면에서 3년동안의 면장생활은 그에게 많은 마음고생을 하게 한다. 쓰레기매립장을 없앤다고 했는데 외려 확대하기로 방침이 바뀌면서 주민들을 이해시키는 일을 맡아야 했다.
“이놈아 네가 살 동네야. 네가 어떻게 이럴수가 있어?”하고 달려드는 주민들을 설득하는 일로 곤역을 치렀다. “그후로 ‘향피제’가 생겼어요. 자기 고향으로 발령나지 않도록 했지요. 그만큼 어려운 시절이었어요”라고 회상한다. 지금은 향피제가 없어졌다.
오해를 받는 것이 치욕이었다.
청렴하게 살고 싶었다. 한 해에 세 자녀가 모두 대학에 재학하는 때가 있었다. 당시에 어려운 봉급으로는 도저히 방법이 없어서 선친께서 물려주신 땅을 팔아 세아이들의 학비를 마련하며 살았던 이국장이었다. 그런 그가 토지거래 허가 업무를 맡을 때였다. 누군가 그에게 돈을 건넸다고 거짓 증언을 했다. 검찰에 불려가 대질을 통해 거짓증언이었음이 밝혀졌지만 그때의 치욕스러운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고 했다.
공무원은 변화를 싫어한다.
시골 면사무소에서 출발한 공무원 생활이지만 누구보다 변화를 꿈꾸며 살았다. 민원봉사과를 맡았을 때 화성시가 전국 최초로 민원인대기표를 발행하는 시스템과 FAX로 민원을 처리하는 시스템을 도입했다. 30분 이상 기다리는 민원인을 5분 이내로 단축시키는 혁신을 일으켰다. “공무원들은 본래 변화를 싫어해요. 그 의식을 바꾸는 것이 가장 어려웠어요. 하지만 그걸 깨려는 노력이 필요해요”라는 말을 후배공무원들에게 남겼다.
전곡항 개발사업 발주자도 그였다. 지역경제과장을 지낼 때 국화도에 전기를 넣어주기 위해서 한전을 설득하며 해저케이블을 깔수 있도록 뛰어 다녔다. 화성시의 굵직굵직한 사업은 그의 손을 거친 일이 많다. 강하면서도 갈등이 생기면 나서서 중재안을 만들어 내려는 노력을 마다 않는 사람이라는 평을 듣고 있다.
행정경험있는 시의원이 필요하다.
1남 2녀를 둔 이국장은 딸이 7급공채 시험을 통해 화성시청 공무원으로 발령을 받게 된 3년전 “아비가 하던 일을 딸이 물려 받을 정도면 이제 물러설 때가 됐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래서 마음의 준비를 해오다가 후진들을 위해 명퇴를 택했다.
넌지시 시의원 출마를 권해보았다. “의회에 있어 보니까 시의원은 행정 경험이 있는 사람이 맡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40년을 했어도 다 알수 없는 행정을 경험없는 사람이 5년안에 거론한다는 건 조금 문제가 있어요. 배우다가 임기가 다가요.” 그래서 기회가 주어진다면 40년의 경험이 시민들을 위해 쓰여진다는 것도 보람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 목하 고민중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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