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가 개성분이예요. 소리 좋아하시고 손이 크고 수완이 좋으셨어요. 8살에 상주로 피난을 갔는데 거기서 처음 본 여성국극단의 창극을 보고 푹 빠졌죠.”

 

상주로 피난 갔던 모녀는 휴전선이 막히자 서울에 자리를 잡는다. 어머니가 삼각지에서 갈빗집을 할 무렵 과천의 신설부대 소대장이던 신동식씨가 자주 드나들었다. 어머니는 신씨가 마음에 들었는지 어린 딸을 인사시켰다. 1962년 강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8년 연상의 신씨와 결혼해 과천사람이 된다.

 

하리에서 땅이 많은 부농의 아들 신씨는 사람 좋아하고 젊어서부터 마을 일에 앞장섰다. 남편이 그러니 집안은 노상 손님들이 그치지 않았고 손님상 준비하는게 강씨의 신혼살림 중 큰 일이었다.

 

새마을운동이 과천면에 시작될 무렵 과천에도 새마을부녀회가 만들어졌다. 강씨는 면장 부인이 강하게 권하는 바람에 부녀회일을 시작하게 됐다. 당시에는 1주일간의 합숙을 하는 새마을교육을 다녀와야 했다. 강씨는 나중에는 농협에서 만든 주부대학까지 마치며 분주한 나날을 보냈다.

 

소리를 좋아했던 강씨는 주민센터에서 민요를 공부했다. 그렇게 공부해서는 군부대로, 양로원으로 위문공연을 다녔다. 소리를 하다보니 흥을 돋우기 위해 사물이 필요했다. 장구를 배우고 본격적으로 사물놀이에 입문한다. 남사당놀이보존회에서 상쇠로 활동하고 과천가락을 잘 하던 임차근씨를 따라 부쇠로 몇 년간 활동한다.

 

1987년 강씨는 당시 경기민요 준 보유자였던 임정란 선생에게 소리를 전수받는다. 임선생은 무형문화재57호 묵계월 선생의 준 보유자로 있다가 경기도무형문화재 31호로 오게 된 때였다. 임선생은 강씨가 자신의 스승인 묵계월 선생에게 사사 받도록 이끌어준다. 이 시기 강씨는 제3호 남사당놀이 무형문화재인 박용태 선생에게 민요와 사물놀이를 사사한다.

 

사물놀이에서 소리, 소리에서 가락장단으로 욕심이 커졌어요. 가락장단은 일정하게 연주하는 사물놀이와 다르게 민요를 할 때 반주의 역할을 하는 장단이라 장구를 칠 줄 안다고 해서 다 가락장단을 칠 수 있는게 아니예요. 그래 1997년부터 백영춘 선생님께 6년을 배웠어요. 백선생님은 과천민속보존회를 많이 도와주셨어요.”

 

1981년 이윤영 과천노인회장은 과천민속보존회를 만든다. 70여 명의 과천 토박이 노인들은 마을별 두레패에서 풍물을 하던 이들이었다.

이들은 일제하에 맥이 끊겼던 과천무동답교놀이를 복원했다. 이윤영 회장은 1988년 남편 신씨에게 과천민속보존회를 맡긴다. 신씨는 구전으로 전해져 마을마다 조금씩 달랐던 공연 형식을 일치시키고 문화재로 등재 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과천시민대상, 내무부 장관상을 받기도 했으나 2002년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난다.

 

예산을 타느라 갖은 고생을 했는데...... 그 돈으로 만들어 온 무대장치가 우리 집 양반 마음에 차지 않았어요. 제작업자하고 언성을 높이며 싸우는 소리가 나더니 전화기를 떨어뜨리고는 쓰러졌어요.”

 

졸지에 남편이자 민속보존회 동무를 잃은 강씨는 무동답교놀이를 문화재로 만드는 일에 매진한다. 무동답교놀이는 2004년 강명자를 상쇠로 문화재 심사를 올렸으나, 조건부 지정이 났다. 과천시에서 시간이 지나가기를 기다려 2007년 무동답교놀이는 다른 이를 상쇠로 심사를 신청해 경기도문화재가 됐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죠. 그러나 어떡하겠어요? 그 뒤로 2010년 문화재청에서 나무꾼놀이를 문화재로 만들자는 제안을 해왔어요. 당시 일처리가 빨랐던 평택에서는 모심기놀이로 금상을 받고, 그해에 평택문화재가 되었다고 해요. 그해 가을 과천시에서 과천시민대상을 받았어요. 1997년 남편이 받은 상이었죠. 부부가 이 상을 받은 건 처음이래요.”

 

그 뒤로 강씨는 후학양성에 힘을 쏟았다. 경기민요가사교본을 큰 활자로 내고, 학교에 국악강사로 나갔다. 장애인사물놀이반을 10년 넘게 이끌었다.

 

2018년 강명자 씨는 자녀들 도움을 받아 [강명자, 삶을 노래하다]라는 자서전을 낸다. 책에는 무동답교놀이의 유래와 구성 그리고 전승방식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과천민속보존회와 남편 신동식 선생에 대해 나와 있다.

 

강씨는 현재 과천이북도민회장을 맡고 있다.

 

(2022.2.7. 이북도민회사무실에서)

Posted by allin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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