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디오카메라가 처음 나왔을 때 그걸 샀어. 하루 날 잡고 과천을 카메라에 담기로 했는데, 과천에 와서 차가 퍼져버리는 바람에 못했지. 참 아쉬워.”

 

이씨는 과천동 124번지에서 났다. 안양중학교에 다닐 무렵, [일렉트로닉]이라는 외국 잡지를 보게 되면서 전자기술에 흥미를 갖게 됐다. 졸업할 무렵에는 광석라디오 만들기에 도전했는데 과천에 아직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서 전기납땜인두를 사용할 수 없었다. 궁리 끝에 구리를 불에 달구어 납을 녹이는 방법으로 납땜에 성공했다. 그렇게 만든 광석라디오를 동네 어른들께 몇 대 팔기까지 했으니, 손재주가 좋았다. 그 라디오를 학교 기술선생님께 보여드리고는 이거 하느라 수업을 제대로 못 들었습니다.’ 라고 말씀드려 졸업장을 받을 수 있었다.

 

충무로에 기쁜소리사가 전파사로는 제일 큰 회사였고, 그 다음이 동양전자였지. 들어가고 바로 기술부장을 맡았지. 몇 년 뒤에 사장이 이민 간다고 회사를 접는 거야. ‘그래? 그러면 내 회사를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청계천에 회사를 차렸지. 한국전파사협회 부회장을 하면서 기술교육을 맡아 했어. 전국에서 수리 못하는 음향기기, TV를 가져오면 밤새 고쳐주고, 기술을 보급하는 일을 했지.”

 

나중에는 한국텔레비전 기술학원에서 강사를 맡아 했다. 전자과가 유명한 한양대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서 이씨는 외국서적을 펴놓고. 밤을 새웠다.

 

콘사이스(사전)를 찾아 단어를 써놓고 뜻풀이를 하는 거야. 영어고 일어고 그렇게 해야 다음날 어제 한 질문에 답을 할 수 있으니까. 가방끈은 짧지만, 기술 하나는 자신 있었지.”

 

그렇게 전자기기 개발에 매달려 세월 가는 줄 모르고 살았다. 60대 중반 어느 날 아침 손에 쥔 커피 잔이 떨어지더란다.

 

이상하다 싶어서 동네 병원엘 가니까 큰 병원으로 가라고 구급차를 부르더라고. 성심병원에 MRI가 처음 들어 온 날, 내가 첫 시험환자가 됐어. 사진을 찍더니 사타구니 정맥에서부터 머리까지 관을 넣고 약을 넣더라고. 얼굴이 뜨거워서 견딜 수가 없어 소리를 질렀어. 의사가 더 밀어 넣으면 가는 뇌혈관이 터질 수 있으니 이 정도까지 하자 그러더군. 대 여섯 달 입원하고 재활치료 해서 이 정도까지 산거야.”

 

최근 그의 관심사는 울트라소닉 즉 초음파다.

 

반도체 생산에 들어가는 웨이퍼에 동시에 3천개의 미세한 구멍을 내는 장비개발에 성공했을 때가 제일 기뻤어. 평생 주식도 부동산투자도 안 해 본 나였지만, 그런 성공 부럽지 않게 좋았지.”

 

전자 기술 말고 그가 해 본 외도는 뜻밖에도 다방이었다.

 

읍내에서 우리집이 부림상회라고 유명했어. 학교 후문 앞이니 아이들 문구부터 콩나물까지 팔았지. 아버님이 남대문으로 영등포로 다니시면서 물건을 떼다 파셨는데, 나중에 그걸 엎어버리고 다방을 차렸어. 면사무소 앞이니 면에 오는 손님들 만나는데 다방이 되겠다싶었지. 커피가 한 잔에 20, 30원 하던 시절이었어. 그런데 마담이 수완이 좋아야 한다길래 안양에서 스카웃 해왔는데, 월급이 3만원이야. 나중에 충무로에서 데려다 놓으니, 매상이 올라가는가 싶었는데 월급이 6만원이야. 그러니 한 달 내내 팔아 마담 월급 주고 나면 적자야......”

 

과천의 집과 문원동 초입의 논을 다 팔고 서울로 이사했다. 그리고 정확히 2년 뒤인 1971, 서울대공원 조성계획이 발표되고, 과천신도시계획이 나오면서 과천 땅값은 다락같이 오른다. 지금 생각하면 아쉬운 일이지만, 이씨는 기술 하나로 부르는 게 값인 시절이었다.

 

전국의 마을마다 앰프를 달았고, 학교에서는 방송장비를 달았어. 방송실 마이크 소리가 50개 교실에서 들릴 수 있도록 신호를 나누는 분배기도 내가 개발했지. 조금 뒤에는 학교에서 교실마다 VTR을 설치하는 일도 했지.”

 

지금은 개발자와 경영자가 나뉘어 각자 제 역할을 하는 것이 당연하다 생각하지만, 그렇게 조직적으로 회사를 운영할 생각은 없었다. 오로지 기술개발에만 매달렸다.

 

광학장비에 들어가는 프리즘에 45도 각도의 구멍을 뚫는 장비를 개발했다. 국산비행기를 만드는 KAI에서 회사를 차려놓고도, 처음엔 45도 각도로 볼트를 박는 기술을 익히는 데만 많은 시간을 들였다는데, 그보다 몇 배 더 어려운 기술개발에 성공한 것이다.

 

최근에는 의료용 초음파 세척기에 이어, 얼굴을 담그면 모공에 이물질을 빠지게 만드는 미용세안기도 개발했다.

 

이씨는 아직 청년이다. 사무실 옆 개발실에는 웬만한 전자회사 몇 개는 차릴 만큼의 장비를 갖추고, 새로 의뢰가 들어오는 전자기기 제작에 도전한다.

 

내 몸과 나의 싸움이지. 몸이 따라주지 않으면 그날로 그만두게 되는 거고. 움직일 수 있으면 해보는 거지.”

초음파는 수평으로 작용하지. 이번에 수직으로 파형을 나타내는 기술개발에 성공했어. 수직 초음파는 나선형으로 나가는데, 아래로 가면서 회전이 일어나 그 기술을 활용한 장비를 개발 했어.”

 

(2021.10.14. 자택에서)

 

Posted by allin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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