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면 목구멍 발언은 약과? 역대 남북회담 비하인드 살펴보니

불같이 화내다 불리할 땐 애걸복걸…재떨이로 술 권하기 기싸움 벌인 후 더 친해지기도


"회담이 필요한 것은 북한이지 우리가 아니다"라는 점을 새기고 임했더라면....


일요신문

http://ilyo.co.kr/?ac=article_view&entry_id=315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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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뉴스투데이 경인취재본부 김용현 기자] 윤미현 과천시의장은 지난 6월 선거에서 '윤미현 캠핑카' 로 화제가 됐다. 처음 출마 때는 50미터 굴뚝에 매단 현수막으로 유명해졌다. 그의 정치 입문을 도운 이홍천 전 과천시의장은 "참신하다. 기성 정치에 때묻지 않았다. 거침없는 성격이라 파문이 걱정이다"라 했었다.

​그런 윤미현 의장을 두고 요즘 말들이 많다. 서울대공원주차장 태양광설치, 오피스텔 용적율, 그린벨트해제, 선바위개발에 이어 신천지 교인인데 말을 안들어 본부에서 *로 보내려 한다는 말까지 무성하다. 주민소환예비모임까지 만든다니 속깨나 시끄럽겠다 싶어 직접 만나 물었다.

​"8년 전 과천교회연합회의 검증을 거쳐 신천지와 무관하단 판정을 받은 일이 느닷없이 다시 나타났어요. 투표 전날 4천여 명이 동시접속한 카페에서 어느 분이 사진을 올리고 매도하다가 제가 해명글을 달자 모두들 보고 있는 가운데 삭제해버리고 사라진 일이 있었죠. 이번엔 그때 캡쳐한 사진을 다른 사람이 다른 커뮤니티에 올리네요. 어이 없어요" 

​기자는 이번 일에 2011년 여인국 전 시장 주민소환 당시가 기억났다. 안상수 의원과 여인국 시장이 과천지식정보타운 개발을 성공시키기 위해 국토부로부터 임대주택을 받아 들여야 한다는 통지를 받고 이를 공개했다가 난리가 났었다. 당시에도 그린벨트, 재건축 같은 잔불들이 큰 불로 번졌다가 모두가 화상만 입고 세금만 낭비한 채 아무 소득없이 끝났었다.


행사장에서 윤미현 과천시의회 의장 <사진=윤미현 페이스북>

윤미현 의장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느냐 물었다.

​"과천은 정치의식이 높아요. 의회구성부터 절대로 특정 정당이 과반을 못가지게 만들어 놓으시죠. 소수의 목소리도 충분히 반영될 수 있구요. 소수의견을 내는 창구도 다양하게 열려 있지요. 그만큼 시의원들이 긴장해야 해요. 그런데도 어떤 분들은 의장은 사회를 볼 때 표결에 참여하지 못한다는 걸 알텐데 당신들 편한대로 구분해 놓고 다른 사람에게 호도하죠. 그게 화나요"

​그래도 지나친 인신공격과 명예훼손에 대해서는 단호한 대처가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말에는 '신중하게 고려 중'이라 답했다.  

​과천시의회는 지난 축제기간에 천막치고 앉아서 시민의견을 들었다. 감사를 앞두고 시민의견을 듣기 위해서였다. 파격이었다.

​누군가 과천이란 이름에 있는 과일도 개천도 없다고 탄식했다. 하지만 양재천을 걷어 내 물길을 열겠다는 윤미현이 있고 야무진 게 꼭 알밤을 닮았다. 

김용현 기자  allinda@naver.com


http://www.enews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238529

181012

Posted by allin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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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혁 보은군수, “여성•장애인•노인이 행복한 보은”

[정책이 선도하는 지방자치 시대-보은군]"스포츠•문화예술 통한 군민들 삶의 질 제고와 지역경제 활성화"

머니투데이 더리더 홍세미 기자2018.08.10

“한 번 당선되기도 어려운 선거, 어떻게 세 번이나 당선됐느냐고요? ‘신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군민들과 저의 신뢰가 3선을 만들었습니다.”

정상혁 보은군수는 이번 지방선거에서 3선을 달성했다. 자유한국당으로서는 쉽지 않은 선거였다. 그에게 3선 비결을 물었다. 답은 신뢰라고 말했다. 군수와 군민들 간에 믿을 수 있는 신뢰가 있다면 선거가 그다지 어렵지 않다고 했다.

“보은은 군수가 누가 되는지가 중요하지 않다.” 정 군수가 처음 보은군수로 취임했을 때는 2010년이다. 그 때 이런 말을 들었다고 한다. 군수가 된 후 바라본 군민들은 그야말로 절망에 빠져있는 듯했다고 설명했다. 정 군수는 군민들의 ‘행복’에 초점을 맞췄다. 단기간에 군민들의 삶을 나아지게 할 수 있는 것은 스포츠와 문화예술이라고 내다봤다. 여자축구리그와 전국장사씨름대회 유치를 확정지었다. 생소한 스포츠가 신기한 군민들은 축구리그와 씨름대회에 모여들었다. 2011년 시작한 대회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2014년에는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대한민국 스포츠 산업대상’을 받기도 했다. 스포츠를 통해 군민들이 화합했다는 평이다. 이후에는 자연스럽게 문화산업이 조성됐다. 1년에 스포츠로 인한 수입이 270억 원이라고 밝혔다.

선거기간에 정 군수에게 ‘나이가 많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기초단체장 중 최고령으로 당선됐다. 정 군수는 장점으로 승화했다. 더 많은 연륜을 가지고 보은군을 이끈다. 지난달 16일 보은군청에서 만난 정 군수는 한 건의 결재도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꼼꼼하게 살피는 그의 모습에 직원들이 조금 힘들기도 하다고 전했다. 

-보은군수 3선을 달성했다. 한국당으로서는 선거가 쉽지 않았을 텐데 소감부터 언급한다면
▶세상 일이 쉽지 않다. 한 번 당선도 어려운데 세 번 당선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유권자들의 신뢰를 얻으면 어려운 일도 아니다. 신뢰는 초지일관 정직해야 하고 매사에 최선을 다하고 열정을 쏟으면 된다고 믿는다. 그런 마음으로 선거에 임했다. 보은군의 발전을 1순위로 생각했다.

-어떤 시책이 신뢰를 쌓았다고 생각하나
▶대군민 지원사업에 대해 공정성을 확보했다. 군민에게 지원되는 사업에 대한 보조비율을 농촌진흥청 시범사업 이외에는 50%로 통일했다. 같은 농민인데 누구는 30%, 누구는 60% 주는 게 불공정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또 군민들에게 지원되는 사업 선정에 대해 일정한 기준이 없었다. 평가항목별 배점을 정해 신청자들 모두에게 점수를 매겼다. 고득점자 순으로 선정, 불만을 해소했다. 이렇게 수치를 제시하니 군민들도 불만이 사라졌다. ‘왜 받지 못했느냐’고 항의하는 군민이 없었다. 이런 점에서 신뢰를 쌓았다고 생각한다.

-보은군의 대표적인 마케팅은 스포츠다. 2010년에 정 군수가 당선된 이후 스포츠를 역점사업으로 삼은 이유는 무엇인가
▶군수가 된 후 군민들을 보고 느낀 감정은 ‘절망감’이었다. 그 당시에는 ‘누가 군수가 돼도 별 수 없다’는 평가가 많았다. 보은은 이제 끝났다고 보는 것이다. 뭐랄까 군민들이 패배감, 열등의식에 빠져있는 것처럼 보였다. 당시 보은군의 인구 유출이 심각할 때였다. 사실 인구 유출은 보은군만의 문제는 아니다. 농촌을 떠나 도시로 가는 인구가 많았다. 특히 제대로 된 산업단지도 없고 속리산 관광객도 거의 없었다. 식당이나 여관은 매도나 임대로 나와 있었다. 지역이 발전하려면 일단 군민들이 긍정적이고 희망적이어야 하지 않겠나. 지역을 발전시키려면 생각을 바꿔야 했다. 단기간에 할 수 있는 것이 스포츠다. 두 번째는 문화예술이다. 스포츠는 일단 같이 환호하고 소리 지르면 서로 공감대가 형성되고 화합이 된다.

-보은은 스포츠 불모지 아니었나
▶그렇다. 당시 보은군은 스포츠 불모지였다. 그러나 가능성을 봤다. 접근성이 좋은 점이 강점이다. 2007년 청주~상주 간 고속도로가 개통돼 서울에서 2시간밖에 걸리지 않는다. 또 부산에서도 2시간이면 온다. 또 속리산이 있고 1500년 역사의 법주사가 있다. 관광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식당과 여관이 있어 체육시설을 보완하면 ‘스포츠 산업’이 가능할 것이라고 봤다. 태백이나 평창, 남해에서 전지훈련을 진행하고 전국대회를 유치하는 곳을 살폈다. 보은군이 경쟁력이 있다고 판단했다. WK여자축구리그와 전국장사씨름대회 유치를 확정하고 지금까지 8년간 계속 개최하고 있다. 어떤 것이든 처음 시작하는 것보다 지속적으로 유치하는 게 어렵다. 8년 동안 이어져온 것에 대한 자부심이 있다.

-여자축구리그와 전국장사씨름대회는 사실 비인기종목이다
▶처음에 여자축구연맹을 만들겠다고 했더니 어떤 사람이 ‘군수님, 생각하지도 마세요. 인구 20만 명인 시에서도 잘 안되는 종목입니다. 농촌은 가뜩이나 농사일도 바쁜데 축구 보러 오겠습니까’라고 이야기하면서 말렸다. 그때 ‘걱정하지 말라’고 말했다. 그만큼 자신 있었다. 천연잔디로 구장을 가꾸고 조명탑을 만들었다. 2011년 3월에 첫 경기를 진행했는데 7000명 이상이 모였다. 보은군이 생긴 이래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인 적이 있었을까. 구장에서 레이저 쇼를 하니까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일단 군민에게 여자축구는 생소하다. 신기해서 모였을 것이다.

-축구리그와 씨름대회 흥행이 보은군민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나
▶붐이 조성되니까 스포츠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다. 이전에는 공부 안하고 운동한다고 하면 ‘공만 찼다’고 비하했다. 지금은 완전히 달라졌다. 체육인들에 대한 대우가 달라졌다. 또 스포츠산업이 지역 경제 활성화에도 기여하니 군민들이 자신감이 생겼다. 스포츠를 통해 화합하고 단결하면서 가능성과 희망을 가지게 된 게 가장 크다.

-보은군 스포츠파크 부지는 당초 공동묘지였다고 하는데. 묘지 이전에 대한 반발은 없었나
▶‘스포츠 마케팅’을 하겠다고 결심했는데 시설이 부족했다. 새로운 체육시설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부지 선정을 고려할 당시 군청 길 건너 1910년에 조성된 21만1000㎡의 공동묘지를 후보지로 정했다. 묘소 연고자가 보은읍에 약 3000명이 있다. 이장을 좋아할 사람이 어디 있나. 진심으로 설득했다. 손편지도 직접 작성해서 주고, 전화도 했다. 2013년에 착공했을 때 시위나 이런 것 없이 진행할 수 있었다. 만약 이것에 대한 반발이 있었다면 2014년에 재선에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2016년에 스포츠파크가 완공됐다. 개장한 이후부터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선수들은 시합 전부터 와서 훈련도 한다. 보은을 많이 찾을수록 지역경제가 살아난다. 또 스포츠파크는 보은읍 주민들의 산책코스로도 이용되고 있다. 또 보은군민들의 음악동아리가 각종 행사 때마다 센터에서 공연을 개최하기도 한다. 올해 30만 명이 찾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지역경제가 어떻게 좋아졌나
▶보은에는 속리산 관광지로 식당과 숙박시설이 갖춰져 있었다. 처음에 보은군수로 취임했을때만 해도 매물로 나온 식당과 숙박업소가 많았다. 장사가 되지 않아서다. 소위 ‘파리 날리는 동네’였다. 조금 노후한 식당과 숙박시설을 재정비하면 접근성도 좋으니 다시 살아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당시 상인들에게 ‘손님 데려올 테니 한 가지만 약속해달라. 밥값과 숙박비를 올리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선수단 환영’을 써서 붙이고 적극적으로 나갔다. 지금까지 8년 동안 가격을 올리지 않는다.

스포츠 산업은 보은군으로선 하나의 산업이다. 농업, 공업, 상업처럼 하나의 산업이다. 1년에 스포츠로 인한 수입이 270억 원이다. 수십만㎡의 산업단지 하나보다 더 큰 경제적 효과인 것이다. 2014년 문화관광부로부터 스포츠대상을 받으면서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

-보은군의 문화수준이 높아졌다고 하는데
▶일단 올해 1월에 보은국립합창단이 창단했다. 총 42명이다. 군 단위 지역에서 합창단이 만들어진 것도 획기적이라고 생각한다. 처음에 이런 것을 기획한다고 하니까 사람들이 ‘일은 안하고 나팔만 분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내가 군수가 된 후에 악단 연습실을 좋게 만들어줬다. 그러니까 점차 늘어났다. 지금은 색소폰, 하모니카, 서예, 미술, 국악, 오카리나 등 동호회가 다양하게 생겼다. 요가, 스포츠댄스, 심지어 줌바댄스도 있다. 보은군의 행사가 있을 때마다 이들이 와서 공연도 해주니 더욱 열심히 한다. 군수가 되고 난 후에 지역경제를 살려 군민들을 행복하게 해주면 좋겠지만 단기간에 안되니 마음이라도 풍족해져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그게 잘 진행돼서 기쁘다.

-정 군수는 보은지역 농축산물 명품화에 나선다고 공약으로 제시했는데
▶보은은 인구의 37%가 농업에 종사하고 있다. 보은 농업 1세대는 사과다. 2세대는 한우, 3세대는 대추, 4세대는 오이•산약초•마늘이다. 이 4세대까지 작목은 명품화가 됐다. 특히 대추는 730㏊에 걸쳐1400 농가가 참여한다. 전국 최고의 품질을 자랑한다. 연간 2500t을 생산하고 있다. 품질이 좋으니 대추축제가 늘 성공하고 있다. 지난해 대추축제가 10일 동안 열렸는데 89만 명이 찾았다. 지난해 10월 한 달 동안에만 택배로 팔려나간 대추가 무려 81억 원어치다. 보은 대추는 크고 당도가 높은 것이 특징이다. 보은 대추의 원종은 사과대추가 아니고 길쭉한 토종 대추다. 이 대추축제의 성공으로 농민의 신뢰가 쌓인 듯하다.

-정 군수의 공약 중 ‘백년대계 글로벌 인재 양성’ 공약이 눈에 띄는데, 어떤 방식으로 양성할 계획인지
▶2012년도에 보은군민 장학기금 100억 원을 조성한 이후 매년 군내 중•고•대학생 250여 명에게 약 3억5000만 원의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 글로벌 인재 장학금을 기탁받아 2011년 이후 매년 초등 6년생, 중2년생 100여 명을 15일 동안 충북대 외국어 연수원에서 영어캠프를 실시하고 매년 중학교 2학년 학생 15명을 미국에 13일간 연수를 보낸다. 이제까지 총 78명이 참석했다. 고등학교 1학년 15명을 대상으로 총 3년 동안 시행, 45명이 다녀왔다. 그만큼 학생 교육에 힘쓰고 있다. 교육은 백년대계라는 마음가짐으로 양성하려고 한다.

-마지막으로 어떤 마음가짐으로 군수의 임무를 수행할 예정인지
▶여성이 행복한 보은이 돼야 한다. 그래야 가정도 행복해진다. 또 우리 군은 노인 비율이 많다. 노인이 행복한 보은을 만들 것이다. 장애인이 행복한 군이 돼야 한다. 이들이 행복하다면 우리 군이 행복한 마을이 될 것이다. 이번 민선 7기에도 부단히 노력할 것이다. 군민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진정한 애향심으로 보은군의 발전에 군민 모두가 동참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現 보은군수
1941년 12월 25일 출생
충북대학교 학사
제7대 충청북도의회 의원
충북4•19혁명기념사업회 부회장
제41, 42, 43대 충청북도 보은군 군수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8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정책이 선도하는 지방자치 시대-보은군]"스포츠•문화예술 통한 군민들 삶의 질 제고와 지역경제 활성화"

머니투데이 더리더 홍세미 기자2018.08.10 09:29

▲정상혁 보은군수/사진=보은군청 제공


“한 번 당선되기도 어려운 선거, 어떻게 세 번이나 당선됐느냐고요? ‘신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군민들과 저의 신뢰가 3선을 만들었습니다.”

정상혁 보은군수는 이번 지방선거에서 3선을 달성했다. 자유한국당으로서는 쉽지 않은 선거였다. 그에게 3선 비결을 물었다. 답은 신뢰라고 말했다. 군수와 군민들 간에 믿을 수 있는 신뢰가 있다면 선거가 그다지 어렵지 않다고 했다.

“보은은 군수가 누가 되는지가 중요하지 않다.” 정 군수가 처음 보은군수로 취임했을 때는 2010년이다. 그 때 이런 말을 들었다고 한다. 군수가 된 후 바라본 군민들은 그야말로 절망에 빠져있는 듯했다고 설명했다. 정 군수는 군민들의 ‘행복’에 초점을 맞췄다. 단기간에 군민들의 삶을 나아지게 할 수 있는 것은 스포츠와 문화예술이라고 내다봤다. 여자축구리그와 전국장사씨름대회 유치를 확정지었다. 생소한 스포츠가 신기한 군민들은 축구리그와 씨름대회에 모여들었다. 2011년 시작한 대회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2014년에는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대한민국 스포츠 산업대상’을 받기도 했다. 스포츠를 통해 군민들이 화합했다는 평이다. 이후에는 자연스럽게 문화산업이 조성됐다. 1년에 스포츠로 인한 수입이 270억 원이라고 밝혔다.



선거기간에 정 군수에게 ‘나이가 많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기초단체장 중 최고령으로 당선됐다. 정 군수는 장점으로 승화했다. 더 많은 연륜을 가지고 보은군을 이끈다. 지난달 16일 보은군청에서 만난 정 군수는 한 건의 결재도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꼼꼼하게 살피는 그의 모습에 직원들이 조금 힘들기도 하다고 전했다. 

-보은군수 3선을 달성했다. 한국당으로서는 선거가 쉽지 않았을 텐데 소감부터 언급한다면
▶세상 일이 쉽지 않다. 한 번 당선도 어려운데 세 번 당선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유권자들의 신뢰를 얻으면 어려운 일도 아니다. 신뢰는 초지일관 정직해야 하고 매사에 최선을 다하고 열정을 쏟으면 된다고 믿는다. 그런 마음으로 선거에 임했다. 보은군의 발전을 1순위로 생각했다.

-어떤 시책이 신뢰를 쌓았다고 생각하나
▶대군민 지원사업에 대해 공정성을 확보했다. 군민에게 지원되는 사업에 대한 보조비율을 농촌진흥청 시범사업 이외에는 50%로 통일했다. 같은 농민인데 누구는 30%, 누구는 60% 주는 게 불공정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또 군민들에게 지원되는 사업 선정에 대해 일정한 기준이 없었다. 평가항목별 배점을 정해 신청자들 모두에게 점수를 매겼다. 고득점자 순으로 선정, 불만을 해소했다. 이렇게 수치를 제시하니 군민들도 불만이 사라졌다. ‘왜 받지 못했느냐’고 항의하는 군민이 없었다. 이런 점에서 신뢰를 쌓았다고 생각한다.

-보은군의 대표적인 마케팅은 스포츠다. 2010년에 정 군수가 당선된 이후 스포츠를 역점사업으로 삼은 이유는 무엇인가
▶군수가 된 후 군민들을 보고 느낀 감정은 ‘절망감’이었다. 그 당시에는 ‘누가 군수가 돼도 별 수 없다’는 평가가 많았다. 보은은 이제 끝났다고 보는 것이다. 뭐랄까 군민들이 패배감, 열등의식에 빠져있는 것처럼 보였다. 당시 보은군의 인구 유출이 심각할 때였다. 사실 인구 유출은 보은군만의 문제는 아니다. 농촌을 떠나 도시로 가는 인구가 많았다. 특히 제대로 된 산업단지도 없고 속리산 관광객도 거의 없었다. 식당이나 여관은 매도나 임대로 나와 있었다. 지역이 발전하려면 일단 군민들이 긍정적이고 희망적이어야 하지 않겠나. 지역을 발전시키려면 생각을 바꿔야 했다. 단기간에 할 수 있는 것이 스포츠다. 두 번째는 문화예술이다. 스포츠는 일단 같이 환호하고 소리 지르면 서로 공감대가 형성되고 화합이 된다.

-보은은 스포츠 불모지 아니었나
▶그렇다. 당시 보은군은 스포츠 불모지였다. 그러나 가능성을 봤다. 접근성이 좋은 점이 강점이다. 2007년 청주~상주 간 고속도로가 개통돼 서울에서 2시간밖에 걸리지 않는다. 또 부산에서도 2시간이면 온다. 또 속리산이 있고 1500년 역사의 법주사가 있다. 관광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식당과 여관이 있어 체육시설을 보완하면 ‘스포츠 산업’이 가능할 것이라고 봤다. 태백이나 평창, 남해에서 전지훈련을 진행하고 전국대회를 유치하는 곳을 살폈다. 보은군이 경쟁력이 있다고 판단했다. WK여자축구리그와 전국장사씨름대회 유치를 확정하고 지금까지 8년간 계속 개최하고 있다. 어떤 것이든 처음 시작하는 것보다 지속적으로 유치하는 게 어렵다. 8년 동안 이어져온 것에 대한 자부심이 있다.

-여자축구리그와 전국장사씨름대회는 사실 비인기종목이다
▶처음에 여자축구연맹을 만들겠다고 했더니 어떤 사람이 ‘군수님, 생각하지도 마세요. 인구 20만 명인 시에서도 잘 안되는 종목입니다. 농촌은 가뜩이나 농사일도 바쁜데 축구 보러 오겠습니까’라고 이야기하면서 말렸다. 그때 ‘걱정하지 말라’고 말했다. 그만큼 자신 있었다. 천연잔디로 구장을 가꾸고 조명탑을 만들었다. 2011년 3월에 첫 경기를 진행했는데 7000명 이상이 모였다. 보은군이 생긴 이래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인 적이 있었을까. 구장에서 레이저 쇼를 하니까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일단 군민에게 여자축구는 생소하다. 신기해서 모였을 것이다.

-축구리그와 씨름대회 흥행이 보은군민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나
▶붐이 조성되니까 스포츠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다. 이전에는 공부 안하고 운동한다고 하면 ‘공만 찼다’고 비하했다. 지금은 완전히 달라졌다. 체육인들에 대한 대우가 달라졌다. 또 스포츠산업이 지역 경제 활성화에도 기여하니 군민들이 자신감이 생겼다. 스포츠를 통해 화합하고 단결하면서 가능성과 희망을 가지게 된 게 가장 크다.

-보은군 스포츠파크 부지는 당초 공동묘지였다고 하는데. 묘지 이전에 대한 반발은 없었나
▶‘스포츠 마케팅’을 하겠다고 결심했는데 시설이 부족했다. 새로운 체육시설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부지 선정을 고려할 당시 군청 길 건너 1910년에 조성된 21만1000㎡의 공동묘지를 후보지로 정했다. 묘소 연고자가 보은읍에 약 3000명이 있다. 이장을 좋아할 사람이 어디 있나. 진심으로 설득했다. 손편지도 직접 작성해서 주고, 전화도 했다. 2013년에 착공했을 때 시위나 이런 것 없이 진행할 수 있었다. 만약 이것에 대한 반발이 있었다면 2014년에 재선에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2016년에 스포츠파크가 완공됐다. 개장한 이후부터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선수들은 시합 전부터 와서 훈련도 한다. 보은을 많이 찾을수록 지역경제가 살아난다. 또 스포츠파크는 보은읍 주민들의 산책코스로도 이용되고 있다. 또 보은군민들의 음악동아리가 각종 행사 때마다 센터에서 공연을 개최하기도 한다. 올해 30만 명이 찾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지역경제가 어떻게 좋아졌나
▶보은에는 속리산 관광지로 식당과 숙박시설이 갖춰져 있었다. 처음에 보은군수로 취임했을때만 해도 매물로 나온 식당과 숙박업소가 많았다. 장사가 되지 않아서다. 소위 ‘파리 날리는 동네’였다. 조금 노후한 식당과 숙박시설을 재정비하면 접근성도 좋으니 다시 살아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당시 상인들에게 ‘손님 데려올 테니 한 가지만 약속해달라. 밥값과 숙박비를 올리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선수단 환영’을 써서 붙이고 적극적으로 나갔다. 지금까지 8년 동안 가격을 올리지 않는다.

스포츠 산업은 보은군으로선 하나의 산업이다. 농업, 공업, 상업처럼 하나의 산업이다. 1년에 스포츠로 인한 수입이 270억 원이다. 수십만㎡의 산업단지 하나보다 더 큰 경제적 효과인 것이다. 2014년 문화관광부로부터 스포츠대상을 받으면서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

▲정상혁 보은군수/사진=보은군청 제공

-보은군의 문화수준이 높아졌다고 하는데
▶일단 올해 1월에 보은국립합창단이 창단했다. 총 42명이다. 군 단위 지역에서 합창단이 만들어진 것도 획기적이라고 생각한다. 처음에 이런 것을 기획한다고 하니까 사람들이 ‘일은 안하고 나팔만 분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내가 군수가 된 후에 악단 연습실을 좋게 만들어줬다. 그러니까 점차 늘어났다. 지금은 색소폰, 하모니카, 서예, 미술, 국악, 오카리나 등 동호회가 다양하게 생겼다. 요가, 스포츠댄스, 심지어 줌바댄스도 있다. 보은군의 행사가 있을 때마다 이들이 와서 공연도 해주니 더욱 열심히 한다. 군수가 되고 난 후에 지역경제를 살려 군민들을 행복하게 해주면 좋겠지만 단기간에 안되니 마음이라도 풍족해져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그게 잘 진행돼서 기쁘다.

-정 군수는 보은지역 농축산물 명품화에 나선다고 공약으로 제시했는데
▶보은은 인구의 37%가 농업에 종사하고 있다. 보은 농업 1세대는 사과다. 2세대는 한우, 3세대는 대추, 4세대는 오이•산약초•마늘이다. 이 4세대까지 작목은 명품화가 됐다. 특히 대추는 730㏊에 걸쳐1400 농가가 참여한다. 전국 최고의 품질을 자랑한다. 연간 2500t을 생산하고 있다. 품질이 좋으니 대추축제가 늘 성공하고 있다. 지난해 대추축제가 10일 동안 열렸는데 89만 명이 찾았다. 지난해 10월 한 달 동안에만 택배로 팔려나간 대추가 무려 81억 원어치다. 보은 대추는 크고 당도가 높은 것이 특징이다. 보은 대추의 원종은 사과대추가 아니고 길쭉한 토종 대추다. 이 대추축제의 성공으로 농민의 신뢰가 쌓인 듯하다.

-정 군수의 공약 중 ‘백년대계 글로벌 인재 양성’ 공약이 눈에 띄는데, 어떤 방식으로 양성할 계획인지
▶2012년도에 보은군민 장학기금 100억 원을 조성한 이후 매년 군내 중•고•대학생 250여 명에게 약 3억5000만 원의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 글로벌 인재 장학금을 기탁받아 2011년 이후 매년 초등 6년생, 중2년생 100여 명을 15일 동안 충북대 외국어 연수원에서 영어캠프를 실시하고 매년 중학교 2학년 학생 15명을 미국에 13일간 연수를 보낸다. 이제까지 총 78명이 참석했다. 고등학교 1학년 15명을 대상으로 총 3년 동안 시행, 45명이 다녀왔다. 그만큼 학생 교육에 힘쓰고 있다. 교육은 백년대계라는 마음가짐으로 양성하려고 한다.

-마지막으로 어떤 마음가짐으로 군수의 임무를 수행할 예정인지
▶여성이 행복한 보은이 돼야 한다. 그래야 가정도 행복해진다. 또 우리 군은 노인 비율이 많다. 노인이 행복한 보은을 만들 것이다. 장애인이 행복한 군이 돼야 한다. 이들이 행복하다면 우리 군이 행복한 마을이 될 것이다. 이번 민선 7기에도 부단히 노력할 것이다. 군민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진정한 애향심으로 보은군의 발전에 군민 모두가 동참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現 보은군수
1941년 12월 25일 출생
충북대학교 학사
제7대 충청북도의회 의원
충북4•19혁명기념사업회 부회장
제41, 42, 43대 충청북도 보은군 군수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8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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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9월 23일 중부일보 인터뷰


30년 공직 떠나는 박수영 경기도 행정1부지사

"페북에 남긴 정책 아이디어 400여건, 후배들 길잡이 되길"
모두가 만류하는 SNS정책 제안...공직경험 오롯이 담아 6년째 지속

한동훈 donghun@joongboo.com  2015년 09월 23일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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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수영 부지사는?
▶부산 출생(1964년) ▶서울대 법대 ▶하버드대(정책학석사) ▶버지니아폴리테크닉주립대(행정학박사) ▶행정고시 합격(29회) ▶대통령비서실 인사수석실 선임행정관 ▶행저안전부 혁신정책관 ▶경기도 기획조정실장·경제실장 ▶경기도 행정1부지사
그는 한 달전 ‘사표’를 썼다. 난생 처음이다. “사인할 때 손이 떨렸다”고 했다. 대통령은 ‘2015년 9월 30일’자로 그의 사표를 수리했다. (1급 공무원이 신청한 명예퇴직은 대통령이 재가한다) 30년 공무원이 30일에 퇴직한다. 공복(公服)을 벗는 박수영 경기도 행정1부지사를 지난 16일 오전 집무실에서 만났다. 후배 차를 얻어타고 경기도청으로 가는 동안 스피커에서 피아졸라의 ‘사계’(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사계)가 흘러나왔다. 그의 삶은 비발디의 ‘사계’보다는 피아졸라 쪽에 가깝다. 물 흐르듯 안정적인 비발디 바이올린의 현과 활처럼 클래식하진 않다. 불협화음처럼 들리는 열정적인 피아졸라 반도네온(손풍금)의 건반과 울림통처럼 탱고스럽다. 자신의 페이스북에 남긴 400여 건의 정책 제안은 ‘공무원 박수영’의 30년 소신, ‘사람 박수영’의 51년 철학을 웅변해 주는 흔적중 하나다.

―시원 섭섭하실 것 같다.

“처음에는 많이 섭섭했다. 사표라는 것을 처음 써 봤다. 박수 받을 때 떠나라는 말이 있다. 밀려서 나가는 것은…. 자존심의 문제다. (남경필)지사의 업무 습득 속도가 매우 빠르다. 1년만에 도정은 물론이고 직원들도 다 파악했더라. 이제는 하산해도 되겠다는 판단이 섰다.”

―10월 1일 아침에 눈을 뜨면 낯설 것 같다.

“아마도 습관적으로 세수하고 출근하려고 하지 않을까. 새벽 1시에 자고 아침 6시 일어나는 습관이 중학교때부터 몸에 배어 있다.”

―새로운 삶이 시작되는 첫 날 계획은 세웠나.

“아버지와 할아버지 산소에 가려고 한다.”

―퇴임식은?

“안 하기로 했다. 우선 울 것 같다. 그리고 국정감사를 준비하는 직원들 시간을 빼앗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 폐 끼치는 것을 가장 싫어한다. 아침에 수원역 노숙자센터에 들러 봉사하려고 한다. 점심시간에는 도청 구내식당에서 배식을 하면서 눈을 마주치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 할 생각이다.”

―경기도청에서 6년이나 근무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일 세가지만 꼽아달라.

“판교테크노밸리 조성, 판교 환풍구 사고 수습, 사전컨설팅감사 제도가 떠오른다. 공직에는 큰 변화를, 경기도정과 국정에는 임팩트를 줬다. 판교테크노밸리는 기업 본사가 경기도로 옮겨오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경기도가 경제 심장이 되는 역할을 했다. 판교 환풍구 사고는 세월호 참사로 멍든 대한민국에 새로운 모델로 갈등 해결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줬다. 사전컨설팅감사 제도는 복지부동의 근본적인 원인을 뒤집었다.”

―공무원 30년, 짧게 정리해달라.

“공인이라는 생각을 단 하루도 잊은 적이 없다. 반듯하게 생활하려고 했다. 남들이 어렵다고 하는 자리, 힘들다고 하는 자리, 바쁘다고 하는 자리만 골라 다닌 것 같다. 지지리 복도 없다. 사무관(5급)때부터 중앙공무원교육원에 보내달라고 했는데 결국 못 가봤다. 본부의 바쁜 자리, 힘든 자리에서 원 없이 일 했다. 50년쯤 일 한 것 같다.”

피아졸라의 ‘사계’는 하나의 완성된 곡이 아니었다. 원제는 ‘네 계절의 포르테냐(아르헨티나 민속음악)’다. 후대 바이올리니스트와 작곡가가 그의 작품 속에서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찾아내서 편곡한 명반이다. 남반구(아르헨티나)와 북반구(이탈리아)의 계절이 어긋나는 문제는 피아졸라의 여름에 비발디의 겨울 악장을 녹이는 방법으로 해결했다. 불가항력적이지만, 그는 자신이 목표했던 공무원 삶에 방점을 찍지는 못했다. 내 관점에서 본 박수영은 국정 컨트롤타워(국무조정실장) 역할을 했더라면, 문제의 답을 찾기 위해 계절을 바꾸는 발상까지 했을 레알 공무원이다. 

―대형 갈등을 풀어냈다. 경기도청 광교신청사 갈등 조정자 역할도 맡았는데 시간이 없어 보인다.

“잘 될 것 같다.”(박 부지사는 이틀 뒤인 18일 합의를 이끌어냈고, 그 결과는 남경필 경기지사와 염태영 수원시장이 21일 발표했다)

―광교신청사 건립 필요성에 대한 논란은 두고두고 계속될 것 같다.

“광교신청사는 오로지 도민과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행정적인 차원에서 진행한 것이다. 김문수 전 지사는 여러 번 안 하겠다는 선언을 하려고 했다. 계속 막았다. 도민과의 신뢰를 깨트리고, 약속을 깨는 것은 안된다고 했다.”

―페이스북에 많은 정책과 아이디어를 남겼다.

“(현직 관료에게는)상당히 위험한 일이다. 많은 친구와 동료, 심지어 기자들까지 쓰지 말라고 하더라. 윗선에서 보면 찍혀서 차관, 장관 못하게 된다고 걱정해줬다. 하지만, 꿋꿋하게 6년 동안 쓰고 있다. 30년 공직 경험이 녹아 들어간 정책을 남겨놓고 떠나면 후배들은 거기서 출발할 수 있다. 아무 것도 남겨놓지 않고 떠나버리면 후배들은 다시 맨 땅에서 시작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대한민국 발전은 없다. 차관, 장관 못해도 대한민국은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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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해리티지, 브루킹스 같은 민간 연구소를 만들겠다는 꿈은 현재 진행중인가.

“그렇다. 대한민국 바꾸는 생활을 연구하는 생활정책연구소를 만들고 싶다.” 

파아졸라의 여름에 갈무리 된 비발디의 겨울은 원래 한 곡이었던 것처럼 자연스럽다. 타의든, 자의든 박 부지사의 정치인 변신은 남미의 여름에 녹아 든 유럽의 겨울처럼 낯설지 않다. 최근 경기도의회에서 그의 내년 총선 출마를 기정사실화하면서 번외 이슈로 삼았던 것이 단적인 예다. 

―도의회에서 거취에 관련된 질문이 나왔다. 남경필 지사가 대신 답변했는데, 기회가 있었더라면 어떻게 대답했을까 궁금했다.(부지사는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면 도의원의 질문에 직접 답변할 기회를 얻지 못한다)

“부지사는 정치와 행정이 만나는 자리다. 1급 공무원은 신분 보장이 안된다. 정치와 행정의 중간에 있기 때문이다. 국회, 도의회, 이익단체, 시위하는 분들, 시민모임 등 다 만나야 한다. 반쯤 정치인이 될 수 밖에 없는 자리다.”

―가족들이 반대하지 않았나.

“어머니가 반대하신다. 아내는 반대하지 않는다. 운명 같은 것이 있는 게 아닌가 느낀다.”

―이유가 뭔가. 

“30년 전 사무관때는 내 시간의 3분의 1 가량을 국회, 감사원 등 외부기관에 빼앗겼다. 지금은 3분의 2다. 권력의 축이 행정에서 국회로 많이 넘어갔다. 대한민국에 산적한 문제가 많다. 행정만으로 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대한민국에 살면서 이런 정책, 저런 정책 해보고 싶은 욕구, 욕망도 있다.”

―많은 선배 공무원들이 정치인 변신에 실패했다.

“가장 공무원답지 않는 공무원이란 소리를 많이 들었다. 복장부터 일하는 방식 등등. 틀을 깨려고 노력했다. 가능하면 큰 틀에서 나라를 보려고 했다. 일자리·복지·건축·외교·조세 등 넒은 분야를 보려고 노력해왔다.”

―나중에 실패한 이유를 물어보면 기름을 빼지 못한 것이 패인이라고 하더라.

“쉽지 않겠지만 각오는 하고 있다. 빼야 한다. 김문수 전 지사가 도지사 그만두기 전날 저녁, 맥주 3병 사들고 공관으로 찾아갔다. 서울 동작 보궐선거에 나가지 않는 이유를 설명해줬다. 국회의원 3번, 지사 2번 하면서 관료의 기름이 (몸에)꽉꽉 배었다고 하더라. 바닥으로, 낮은 곳으로 가서 기름을 빼지 않으면 좋은 정치인이 될 수 없을 것 같다고 했다. 소록도로 떠나고, 꽃동네로 가고… 그런 자세를 보면서 많이 생각하고 많이 배우고 있다.”

―관료 출신은 헝그리 정신이 없다고들 한다.

“갑으로 살았기 때문에 그렇다.”

―정치적 이벤트를 한다는 가정아래 던지는 질문이다. 원희룡 제주도지사, 나경원 국회의원, 김난도·조국 서울대 교수를 초대하면 와줄 것 같은가.(이들은 서울대 법대 동기동창생들이다)

“나경원은 올 것이다. 원희룡은 현직 도지사니까 정치 중립성 때문에 못 올 것 같다. 남경필 지사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선거법, 정치의 중립성 문제에 걸리지 않은 이상 와주실 것이라고 믿는다. 원희룡 지사도 법적인 문제만 아니면 얼마든지 올 친구다.” 

피아졸라의 겨울은 비발디보다는 덜 춥고, 봄은 조금 더 따뜻하다. 철이 바뀌는 변화는 밋밋하지만, 색깔 만큼은 분명하다. 겨울과 봄의 갈림길에 선 박 부지사는 수원에서 인생 2막 1장을 시작한다. 민간인 첫날(10월 1일) 아주대학교 강단에 선다. 노후 대책으로 구입한 수원 광교신도시 상가형 주택으로 이사도 한다. 부산에서 태어나고 서울에서 성장한 박 부지사는 수원에서 새로운 계절을 맞는다.

―이사 날짜는 잡았나.

“10월 15일에 한다.”

―길일인가?

“그렇다고 한다.”

―이제 정말 수원시민이 됐다. 

“수원시민이 된지는 오래됐다. 관사에서 계속 살았다.”

―후배 공무원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이 많을 것 같다.

“대한민국이 매우 어렵다. 경제적으로도, 외교적으로도 쉬운 일이 하나도 없다. 문제도 산적해있다. 그런데 사건사고가 많다 보니 높은 곳에서부터 낮은 곳까지 발등의 불을 끄기도 바쁘다. 이래서는 큰 문제들이 장기적으로 해결이 안된다. 공무원은 정치상황이 흔들리고 사건사고가 발생해도 뚜벅뚜벅 장기적인 시각으로 나라를 끌어가는 유일한 존재라는 생각을 잊지 말아야 한다. 뚜벅뚜벅 혼을 바쳐서 자기 몫을 해야 한다.”

피아졸라의 네 계절은 박 부지사와 닮았다. 담대하고 열정적이면서도 낭만적이다. 공무원의 삶은 고독하지만, 민간인의 삶은 외롭다. 경기도청은 우연한 기회에 얻은 큰 인재를 잃게 됐다. 올 겨울은 유난히 춥고 길게 느껴질 것 같다.

한동훈기자/donghun@joongb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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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우란 이름을 검색하면 어느 사회복지사가 "안양 행복한치과 김영우 원장님 감사합니다"란 글이 뜬다.

형편이 어려운 어르신을 모시고 갔더니 정성껏 치료해주고 치료비도 받지 않았다"는 내용인데 오래전 글이다. 남을 돕는 일이 그에게는 특별한 일도, 자랑할 일도 아니다. 그저 생활일 뿐이다.

그런 김영우 치과의사가 사단법인 난치병아동돕기운동본부 이사장이 됐다. 

"선배들께서 잘 이끌어 오셨어요. 제 임기 동안에는 봉사자들의 처우개선에 힘쓰고자 합니다. 박봉에 희생을 강요하는 게 너무 미안해요"라고 말한다.

난치병아동돕기본부는 올해 12회 세상의 다리가 되어 준 나무콘서트를 연다.  안양의 대표적인 기부행사로 자리잡아가는 이 콘서트는 그동안 다양한 포맷으로 공연을 펼치고 준비과정에서, 공연 관람을 통해 사회기부를 함께 하는 행사다.

올해는 11월 1일 오후 7시에 안양 아트센터 수리홀에서 연다.

올해 공연은 지역 예술인들의 공연과 전문 예술인들의 오페라갈라콘서트를 볼수 있게 된다.

고제형 음악감독은 "한 단계 높은 수준의 공연을 완성하기 위해 5대 오페라 유명 넘버를 연주하는 코너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고 감독은 독일에서 공부하고 돌아와 연주자들을 가르치는 활동을 하다가 김 원장에게 잡혀서 이들의 공연기획을 떠안게 됐다고 웃는다.

김영우 원장은 김영우치과의원을 하던 시절부터 어르신들과 장애인을 위한 진료봉사에 시간과 재능을 써왔다. 간호사를 비롯한 직원들이 그의 성품을 알기에  이직없이 오래 함께 해온 병원으로도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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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생 김경수씨는 2018년 2월 만기출소했다. 29년을 복역했다.

무기수는 희망이 없는 삶을 산다. 

구치소 안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심리를 파악하는데 도가 트인 사람들이다. 자신들을 위로하겠다고 접근하는 교도관들이나 목사, 스님 같은 종교인들, 그리고 교정위원들의 양면성에 일찌감치 기대를 버리고 산다.

1989년 무기수가 된 김씨는 2003년 동부구치소 교정위원 박이균씨를 만난다. 박씨는 김씨에게 편지를 쓰고 책과 영치금을 보내 주면서 위로하고 사회복귀를 도왔다. 

김씨는 "희망이 없는 삶, 돌아갈 곳이 없는 삶에 희망을 품게 해 주신 분"이라 말한다. 

박 위원은 올해 2월 29년 만에 출소한 그를 양아들로 입적했다. 박 위원을 만나 희망의 싹을 키워 온 김경수 씨는 건축기사, 건축시공기능장 등을 23개의 자격증을 취득하고 전국기능대회에서 메달을 수상하는 등 재기를 준비해왔다. 출소 후 인테리어회사에서 팀장을 맡고 있다. 

그런 양아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양아버지는 참한 처자와 가정을 꾸리게 하는 것을 소망하고 있다. 무기수를 입적하는 절차만 3년이 걸렸다고. 가족은 물론 법무부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데 전례가 없는 일이어서 공무원들이 절차를 이해하는데만도 많은 시간이 걸렸다고 전한다.

무기수는 대개 20년 형을 받아 17년 정도를 복역하면 출소하는 것이 관례였다. 그러나 조두순, 유영철 등 강력법이 사회를 불안하게 하고 이들을 사회와 완전하게 격리해야 한다는 국민법감정에 호응한 정부는 양형위원회를 만들고 사면제도를 없앴다. 김씨도 2006년 10년 형이 늘었다. 

30년을 복역하면 출소 할 때 나이가 6,70대다. 사회복귀는 불가능하다. 이미 가정은 파괴된 상태고 친척들은 남보다 못한 상태가 된다. 모범적인 장기수에게 감형의 기회를 주어야한다는 주장이 커져가는 이유다.

기능장까지 딴 김씨가 건설회사에 취업하지 못하고 개인인테리어회사에서 일하는 이유가 나이 때문이다. 남들 은퇴할 나이에 사회 초년생이다. 김씨는 자기 사업을 하는 것이 유일한 길이고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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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이균 교정위원 국민포장 받아, 

73회 교정의날 기념식장에서


한국교정상담복지회 대표 겸 서울시 동부구치소 교정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박이균씨가 26일(금) 10시 과천 법무부 청사에서 열린 제73주년 교정의 날 기념행사에서 대한민국 국민포장을 받았다.


국민포장은 국민훈장에 준하는 포상으로 대통령표창보다 한 단계 높은 것으로 민간인이 수상하기 쉽지 않은 훈장이다.


박이균 위원은 1990년 안양교도소 교정위원으로 활동을 시작한 이후 원주에 한국교정상담복지회를 열고 현재까지 재소자들의 자활자립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또한 장기수에게도 삶의 희망을 주어야한다며 사형수제도의 폐지를 주장하고 있다.


박위원은 지난 2006년 교정부분 국무총리 상을 수상한 바 있으며, 최근에는 서울 동부구치소에서 감사패를 받았다.


박이균 교정위원은 "큰 상을 받게 되어 기쁘지만 상당히 조심스럽고 부담스럽다. 30여 년을 봉사한다고 교도소를 드나들었지만 이렇게 큰 상을 받을 자격이 되는지 모르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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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도관이 교정위원되면 재소자 교화에 효과 클 것



한국교정상담복지회 박이균(77세) 대표. 암으로 한쪽 콩팥과 쓸개를 절제했다. 전립선암과도 싸우는 중이다. 붓기가 빠지지 않은 얼굴이지만 푸근한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박이균 위원은 27년을 교정봉사로 보냈다. 서울동부구치소, 육군교도소, 원주교도소 등에서 교정위원으로 봉사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때는 국무총리 표창을 받기도 했다.


그런 박 위원에게 가장 큰 보람은 아들 셋을 둔 그가 3년 전 얻은 양아들 김경수씨다. 1989년 무기수가 된 김씨를 2003년 만났다. 편지를 쓰고 책과 영치금을 보내 주면서 위로하고 사회복귀를 도왔다. 김씨는 "희망이 없는 삶, 돌아갈 곳이 없는 삶에 희망을 품게 해 주신 분"이라 말한다. 박 위원은 올해 2월 29년 만에 출소한 그를 양아들로 입적했다. 박 위원을 만나 희망의 싹을 키워 온 김경수 씨는 건축기사, 건축시공기능장 등을 23개의 자격증을 취득하고 전국기능대회에서 메달을 수상하는 등 재기를 준비해왔다. 출소 후 인테리어회사에서 팀장을 맡고 있다. 그런 양아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양아버지는 참한 처자와 가정을 꾸리게 하는 것을 소망하고 있다. 무기수를 입적하는 절차만 3년이 걸렸다고. 가족은 물론 법무부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데 전례가 없는 일이어서 공무원들이 절차를 이해하는데만도 많은 시간이 걸렸다고 전한다.

많은 교정위원들이 쉽게 보람을 찾고자 단기수형자에게 접근하는데 반해 박 위원은 장기간 옥고를 치르는 무기수 상담에 공을 들여 온 점이 남다르다.?


처음 교정봉사를 하시게 된 계기는?

- 형님께서 교도관이셨어요. 교정공무원들을 자주 만나면서 진심을 다해 재소자들을 교화하려 노력하는 모습을 보면서 도와주다보니 오늘까지 왔네요. 재소자 인권도 김대중 정부 시절에 획기적으로 개선되기 시작했지요. 하지만 아직도 할 일이 많습니다.?


27년 교정봉사 통해 얻으신 것이라면?

- 조두순, 유영철 등 강력사건으로 국민법감정이 무기수에 대한 형을 무겁게 내려야 한다는 쪽으로 흐르면서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 양형위원회를 통해 기존 20년 형을 가처분없는 30년형으로 무겁게 형을 내리게 됐지요. 사면제도를 없애고나니 박근혜 전 대통령이 이 법에 해당되서 중형을 받게 되니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할 수도 있지요.

이전에는 20년형을 받게 되고 17년 정도면 출소가 가능했는데 감형없이 30년형을 살고 나면 대부분 6,70대에 출소하게 됩니다. 사회복귀는 어림없어요. 인권 차원에서도 형량을 조정해야 합니다. 국민청원을 하고 있습니다.


교정제도를 보완할 방법이 있을까요?

- 구치소 마다 100여 명의 교정위원들이 있지요. 대부분 지역인사들을 위촉하게 됩니다. 대부분 수형자들에 대해 모릅니다. 평생을 교화행정에 보낸 퇴직교정공무원들을 교정위원으로 위촉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현장에서 수형자들을 가장 잘 아는 이들이 맡게 되면 더 큰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박이균 대표는 함평에서 나서 서울에서 사업을 했다 안양에서 처음 교정위원으로 위촉됐고 동부구치소(성동) 관내에서 오래 일했다.

유도를 전공하고 아들이 이회창 대선후보 경호를 맡았다가 원주에 정착하면서 내려왔다. 체육관을 하는 아들도 지역봉사로 유명하다. 문막에서는 체육관 박관장 아버지로 더 유명하다. 원주생활을 하면서 육군교도소 등 군 교정봉사에도 힘을 쏟고 있다. 종교는 기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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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너 박대영 독창회가 5월 13일 안산 예술의전당에서 열린다. 안산 동춘한방병원 원장인 박대영의 평생 음악사랑이 독창회로 펼쳐진다.

▲ 테너 박대영 동춘한방병원장     © 경기뉴스



13일 공연은 박원장이 11곡을 부르고 박원장과 함께 노래하는 한의사들로 구성된 중창단 나블리앙의 연주가 더해질 예정이다.
 
1960년 광주 출신 박대영 원장은 어려서 부터 노래 부르기를 좋아했다. 원광대 한의대 재학 중에는 중창단 하모니안을 만들면서 중후한 남성합창의 매력에 빠져 들었다.
졸업 후 개원의가 된 단원들은 나블리앙이라는 중창단을 만들었고 병원진료를 마치고 모여 노래 부르는 기쁨을 누리며 지냈다.
 
이들을 지도해 온 고제형 음악감독은 "성악을 전업으로 하지 않는 이들이 정기적으로 모여 실력을 쌓아 나가기가 쉽지 않은데 박원장이 독창회에 도전할 만큼 실력이 나아지고 있는 것은 그가 노래 부르는 것을 인생의  기쁨으로 여긴다는 것이 가장 큰 강점이다"고 말했다.
 
박원장이 노래하는 걸 온 가족이 응원한다. 그는 연애할 때 부터 떨어져 있을 때는 아내에게 전화로 노래를 불러주는 로맨티스트다. 이번 독창회에는 팔순 노모와 함께 노래하는 깜짝 이벤트도 계획중이다. 
 
박원장은 "어린 시절 바깥풍경을 보는 집 베란다에서도, 버스를 기다리던 정류장에서도 사람들이 있든 없든 언제 어디서나 노래를 불렀습니다. 대학시절 남성중창단 친구들과 틈만 나면 학교 소나무 밭 그늘에서 화음을 맞춰보았죠. 화음이 어루러져 아름다운 소리가 날 때면 그 감동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노래는 사춘기의 거친 마음도 부드럽게 달래 주었고 함께하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기쁨도 주었습니다. 이번 공연도 노래를 잘 해서 자랑하려고 시작한 것이 아닙니다. 늘 마음에 품고 있던 음악에 대한 애정을 함께 나누고 싶을 뿐 입니다"라고 말한다.
이어 "하고자 하는 것이 있다면 계획을 세워 꾸준하게 노력하고 실행에 옮기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살아가는 삶 속에서 위안이 될 수 있는 것이라면 그 위안을 희망으로 키워 나가자고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제가 음악을 통해 위안을 얻었듯이 팍팍한 생활 속에서 음악을 통해 위안을 받으셨으면 하는 작은 바램이 있습니다"라고 덧붙였다.
 
이런 평소 생각이 전문의료인의 길을 걷는 동안에도 그대로 투영됐다, 박원장은 본초학 박사이면서 추나치료에 대한 일가를 이룬 사람이다. 임상에서 환자들을 만나면서 소통하고 위안을 주기 위해서는 관계의 소중함을 안다. 그 방법으로 음악을 택한 것이다. 
 
박원장의 동춘한방병원은 그동안 입원환자를 대상으로 한 작은 음악회를 몇 차례 열었다. 박원장은 여기서 더 나가 입원환자를 대상으로 인물화스케치, 퀼트, 비누공예 등을 함께 하는 프로그램들을 정착시켰으면 하고 바란다. 이전 몸바로한의원을 운영 할 때 시행했더니 환자들과 소통이 되고 더 친민한 관계를 이루면서 치료효과도 높아진다는 것을 체험했기 때문이다.
 
"치료는 실력 보다 신뢰가 우선해야 효과가 있다는걸 느겼죠. 저는 기적을 믿어요. 성경에서 예수을 만진 혈루병 앓는 여인이 나은 것은 그녀가 예수를 만나면 병이 나을수 있을거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예요. 예수도 그녀에게 '네 믿음이 너를 구원했다'고 말씀하시거든요"
 
박원장의 진료스타일은 진료하는 동안 자리를 떠나지 않고 환자와 대화를 나누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의사와 환자가 서로를 신뢰할 때 치료효과가 커진다는 믿음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자세를 지켜 나가는데 음악은 가장 큰 원동력이 된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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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다문화중앙회 안양시연합회 창립식 및 다문화아카데미 개소식이 4월 29일 안양 관양동 사랑의밥상에 열렸다. 이필운 안양시장 등 지역인사들과 다문화가족 등 150여 명이 참석한 이날 행사에서 권철기 중앙회 통합위원장에게서 인준서를 받은 남기만 안양연합회장은 다문화식구들이 얼굴은 달라도 우리는 하나라는 마음으로 어울려 살아가도록 돕는 일을 해나가겠다고 다짐했다. 아카데미 개소식에서 노재영 고문은 행복을 찾아 한국에 온 다문화 가족들이 한국인으로 적응해나가도록 도울 것이라  말했고 윤정택 이사장의 인사말도 있었다. 이날 국제나은병원과 협력을 위한 MOU 체결식이 이어졌다.  행사장에는 다문화가족을 위한 취업상담이 함께 열렸다. 행사를 기획한 이종철 중앙회 베트남사업단장은 안양에는 6천, 군포에는 1만1천 여 명의 다문화가족이 살고 있다며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사업을 펼쳐 나가겠다고 말했다.


안양연합회장 취임인사

경기뉴스유튜브 경기티비 https://www.youtube.com/watch?v=m6U7ow119y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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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시장 도전하는 홍미영 부평구청장 "사람이 먼저다"

"6번 선거 승리비결은 사람의 마음을 사는 것"

[이뉴스투데이 경인취재본부 신윤절 기자] 26일 홍미영 부평구청장은 인천시장 예비후보로 등록한다.
1985년 ‘해님방’이라는 공부방을 열고 인천에서 빈민·여성운동에 투신한 홍 구청장은 1991년 초대 부평구의원, 2·3대 인천시의원을 지냈다. 2002년 노무현 대통령 후보 캠프에서 정무2팀장을 맡았고, 2004년에는 인천 최초로 여성 국회의원(비례)이 됐다. 2010년 부평구청장으로 인천에 돌아와 재선인 그녀는 이제 전국 최초 여성 광역단체장에 도전한다. 
지난 1월 [사람사는세상이온다] 출판기념회에서 그녀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참된 권력은 가장 약한 자의 연약함을 돌보는 것’이라고 말했다”며 “삶의 현장에서 정치인이나 행정가는 손은 시민과 함께, 눈을 멀리 바라보고 발은 반 발자국 먼저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장 약한 자의 연약함을 살피면서 큰 바다까지 멀리보고, 사람이 먼저인 가치를 품고, 현장에서 주민들과 함께 걸어가겠다”라고 말했다.
-기초·광역의원,기초단체장,국회의원 등 선출직은 대통령 빼고 전부 도전해 유일하게 성공했다. 기록 때문에 광역단체장에 도전하나?
▶인천은 지금 사람이 중심이 되는 시정이 필요하다. 도로 하나를 놓더라도 시민들의 편의성을, 이로 인해 발생하는 억울함은 없는지 살펴야 한다. 지금까지 국가와 행정은 사람보다는 국가적 이익 등을 우선 고려했다. 이젠 국가의 이익을 위해 개인의 희생을 강요해서는 안된다. 지금은 구성원들의 최대공약수를 찾는 행정의 노력이 우선되어야 한다.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협치를 어떻게 이뤄나가느냐에 따라 행정효율이 좌우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적임자이다.
-한국GM 군산공장 철수선언 이후 부평은? 
▶인천시민 범시민대책위가 꾸려져야 한다. 부평공장 근로자 가족만해도 만 여 명의 생계가 달린 일이다. 120년 역사를 가진 다국적기업의 노회한 전략에 맞서려면 근로자와 협력회사, 주변상인들, 시민사회가 한데 모여 의논해야 할 문제다. 그래야 보다 근본적이고 확실한 해결책을 마련할수 있다. 2002년 대우가 헐값에 공장을 넘기면서 부평구민들이 입은 피해를 되풀이 할순 없다. 지난해 9월 상황이 불안하다는 판단에서 협력사, 근로자, 주변상인들을 만나면서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포럼을 만들고 GM 차를 사 주십사 하고 어깨띠를 매고 부평역 앞에서 판매캠페인을 하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2002년 대우사태를 겪었으면서도 인천발전연구원에 자료하나 제대로 없다는 걸 알고 의회에 연구비를 승인해 주십사 했지만 정치적 이유로 거절되어 안타까왔다. 여야를 떠나 문제 앞에서 크게 생각하는 정치문화가 아쉽다.
​-구청장 재임시 숙박행정이 화제였는데
▶대화와 토론으로 문제를 해결해본 사회적 경험이 부족한 우리 사회 특성 상 당사자들을 갈등해결의 장으로 이끌어내 이견에 대한 합의와 절충을 도출해 내기가 쉽지 않다. 지방자치단체가 공공갈등관리 시스템을 제도적으로 체계화하는 것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갈등관리의 시작은 '주민과의 만남'이다. 상대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부터 출발해야 갈등을 관리할 수 있다. 함께 잠을 자며 동네의 속내를 듣는 이른바 '1박 2일 숙박행정'도 그래서 나온 정책이다. 2013년 1월 처음 숙박행정을 시작했다. 야간과 새벽시간 등 행정이 놓치기 쉬운 사각 시간대 주민들의 삶을 들여다보겠다는 취지로 시작했다. 22개 동을 대상으로 두 차례에 걸쳐 모두 44회 숙박행정을 진행했다. 주민들이 숙박행정 중 건의한 287건의 현안 가운데 50%가 행사 진행 중 해결됐고, 처리가 불가능하다고 통보한 민원은 전체의 6%인 18건에 불과할 정도로 좋은 성과를 거뒀다. 특히 민원 결재 권한이 있는 부서장들이 현장에 참석, 불만을 갖고 있는 주민들의 목소리를 함께 듣도록 하니 해결책이 더 빨리 나왔다. 숙박행정은 2011년 십정동 재개발 사업 당시 문제들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얻은 경험이 발단이 됐다. 70여일 동안 주민과 만나 다양한 의견을 들었다. 부평구 행정의 대표적인 모범사례인 공공갈등조정제도 역시 같은 맥락에서 비롯됐다.갈등관리를 얼마나 잘 하느냐가 좋은 단체장의 평가 기준이 될 수 있다. 구청장이나 공무원이 시민들 삶 속에 깊숙이 찾아가 살아있는 행정을 펴야 한다. 그러면 주민들은 민원을 제기하면서도 한편으로 시민으로서 정체성을 느끼고 시민의식도 높아져 자연스럽게 마을 공동체를 일궈가는 힘을 얻게 된다. 
-이웃 부천시 대기업쇼핑몰 건립을 저지한 건?
▶상동 신세계쇼핑몰은 행정구역은 부천이지만 생활권은 부평구다. 신세계가 목표하는 매출1조는 부평사람들 주머니에서 나가는 돈이다. 주변 영세 상인들에게 갈수 있는 돈인 것이다. 상권영향권이 반경 3km다. 해당 반경 안에서 약한 이웃들이 피해를 입는 것은 막아야 했다.상인들의 시위에 참여하는 한편 정책당국을 설득해 나갔다. 그런 와중에 인천시가 청라에 건축허가를 내준다는 얘길 들었다. 부평구청 앞에서는 내게 부천시의원들이 자폭하라며 시위를 했다. 8월 17일 인천시에 요청했다. 30일이면 부천상동 계약종료일이니 그때까지만 기다려 달라고 했다. 때마침 정부가 소상공인지원대책을 발표했다. 공정거래위원장, 정책실장에게 편지를 해서 중재에 나서달라고 요청했다. 결국 31일 신세계가 사업 포기를 발표했다.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무너져서는 안된다는 생각이다.

-인천의 가장 시급한 현안과 해결 방안은 무엇인가.

▶도시의 양극화 극복이다. 이는 원도심 활성화를 통해 해결 가능하다. 인천도시공사를 내세운 관 주도의 도시재생뉴딜 추진은 취지에 맞지 않다. 주민과 시민사회의 역량을 믿고 그들에게 권한을 주되, 관이 지원하는 방식으로 원도심 재생을 추진해야 한다. 송도·영종·청라 역시 공영과 민간 방식을 혼합한 새로운 발전전략을 세워야 한다. 나의 도시발전전략의 기본은 경제와 사회, 환경이 균형과 조화를 이루는 도시, 지속가능한 도시이며, 사람 중심의 도시다.

-인천시 부채 문제가 이번 선거 이슈가 되나?

▶시민들에겐 시 재정 문제보다 시가 해야 할 일을 적시에 하느냐 못하느냐가 중요하다. 부평구도 민간투자인 BTL도 부채로 잡는다면 1100억의 부채를 안고 있었다. 순위 5위에 든다. 그중 639억을 상환했다. 구청 부채는 제로다. 부평구는 재산세를 내는 땅이 전체 면적의 3%밖에 안되는 작은 도시라 세입이 적다. 그런데도 사회복지비는 4천억으로 65%를 치지한다. 그중에 기초수급자가 치지하는 비율이 전국 5위 장애인 비율이 전국 4위에 이를 만큼 돌봐야 할 곳이 많은 도시다. 남은 돈 2천억으로 봉급주고 나면 가용 예산은 1%도 안된다. 그런 상황에서도 빚을 갚았다. 빚이 없는게 자랑이 아니라 시민이 행복한 도시를 만드는게 중요하다. 
-미투가 대세다. 여성정치인으로서 한마디 한다면?
▶미투는 성을 이용한 갑질, 약자에 대한 적폐가 청산되기 위한 계기다. 공정하고 평등한 사회로 나가려는 문재인 정부의 의지가 사회 현상에서 드러나는 문제들의 일면이다. 대통령 하나 바꿨다고 될 일이 아니다. 이번 지방선거를 통해 내 주변이 달라지는 계기가 되야 한다. 남성 중심의 사회, 성을 이용한 갑질을 방조한 여성계의 잘못된 적폐가 사라져야 한다.위드유가 필요하다.
- 선거에서 한 번도 진 적이 없다. 비결이 있다면?
▶인천에서 선거에 당선되려면 인천 출신이거나 호남, 충청 출신이라야 유리했다. 그런데 난 실항민의 딸이고 경기여고를 나왔다 아무 연고 없이 나섰다. 당시 여성후보는 경선에서도 불리했다. 그런 6번 선거에서 당선된 것은 시민이 원한다는 반증이다. 사람들은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보니 달라질 것 같다는 희망을 느낀다고 말해주었다. 부평구는 두 개의 국회의원 선거구를 가진 넓은 지역이다. 하지만 한 군데서 이야기를 마치고 일어서면서 마음을 얻었다는 확신을 가질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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